“성형, 영월임방에는 어떤 물건들이 필요한가?”

“물목을 보면 알겠지만, 영월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목들이 있다네.”

“영월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라면 우리 본방에 있을라나 모르겠네.”

최풍원이 성두봉과 영월임방을 차리는데 도움을 주기로 하고 물건들을 대주겠다고 한 것은 물목을 먼저 보고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가서 구해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구휼미 문제로 영월에서 성두봉이 북진에 당도하기 전 최풍원이 장석이와 박왕발이를 대동하고 충주를 다녀왔기에 영월임방을 차리는데 어떤 물건들이 필요한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북진본방은 물건이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부터 물건을 받아쓰고 있는 형편이므로 품목이 다양하지 않았다. 당연히 성두봉이 필요로 하는 품목들이 제대로 갖추어있을 리 없었다. 최풍원이 박왕발이를 불러 물목을 쥐어주고는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보냈다. 성두봉이 필요로 하는 물건뿐 아니라 지금 북진본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장 형편도 전해주도록 박왕발에게 말해주었다.

이런 난장이 북진에서 서는 것이 처음이기는 했지만, 지금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물품들은 너무 단순했다. 구휼미를 내주며 수결을 받거나, 장꾼들이 가지고 나온 물건과 쌀을 물물교환하는 수준이었다. 일단은 구휼미를 통해 북진본방과 임방들의 존재를 알리고 앞으로 상권을 키우겠다는 것이 최풍원의 계산이었다. 한술 밥에 배부르기를 바라는 것은 씨앗도 뿌리지 않은 밭에서 싹이 트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최풍원도 그런 욕심은 없었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모든 일들이 생각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장마당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나 똑같았다. 북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서로들 거래가 이루어졌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임에 따라 사람들마다 필요로 하는 물건들도 다양했다. 최풍원은 북진에 모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충주 윤 객주에게 물건들을 요청해 북진난장을 좀 더 활발하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 사정을 상세하게 알려줄 것을 최풍원은 충주로 떠나는 박왕발에게 단단히 일렀다.

성두봉이 북진에 당도했던 바로 그날 풍기 피륙상 천용백도 같이 장사를 다니는 일행들과 함께 떼를 모아 들이닥쳤다. 영월에서 온 성두봉 일행들은 부피와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이라 모두들 지게를 지고 왔지만, 풍기에서 온 천용백 일행들은 부피가 작고 무게가 덜나가는 물건들인지 한결같이 걸빵을 맨 등짐을 지고 있었다.

“동생, 이 사람들도 인사를 해두면 좋을 것 같아 같이 왔다네!”

천용백이 들어서자마자 일행부터 소개를 했다.

“형님, 풍기서는 언제 떠나 지금 당도한 것이오?”

최풍원이 그간의 노정을 물었다.

“보통 사흘이면 예까지 당도했을 텐데, 이번에는 닷새가 걸렸다네!”

“왜요?”

“죽령주막에서 이틀을 묵었다네!”

“형님, 장사를 나간다고 집을 떠나서는 주막에서 술타령부터 하셨구려. 왜 맘에 쏙 드는 들병이라도 만나셨소?”

최풍원이 야릇한 눈빛을 보내며 천용백이를 놀려댔다.

“그런 팔자 좋은 소리 하지도 말게! 요새 용부원에 화적떼들이 노다지 나타나 장사꾼과 행인들 물건을 빼앗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수십 명 모아 내려오느라 그리 되었네!”

“죽령같은 대로에도 화적떼들이 나타나다니 사람들 살기가 어지간히도 죽을 지경인가 보오!”

“잡히면 당장 모가지가 달아날 판인데도 화적질을 한다면 이판사판인 셈이지.”

죽령은 경상도 영주의 풍기와 충청도 단양의 대강 사이에 있는 큰 고갯길이다. 죽령이란 이름도 신라 때 죽죽이가 이 고개를 개척했다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명칭이다. 신라 때 만들어졌으니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옛길이다. 백두산에서부터 남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린 백주대간은 거대한 산줄기를 이루며 강원도 동쪽 바다를 따라 흐르다가 태백산에 이르러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륙으로 향한다. 그러다 한반도의 허리쯤에 이르러 소백산이라는 큰 산을 토해낸다. 이 소백산이 영남과 호서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

소백산의 여러 봉우리 중 가장 낮은 연화봉과 도솔봉 사이를 뚫어 만들어진 고개가 죽령이다. 가장 낮고 순한 곳을 택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죽령고개는 옛날부터 오르막 삼십 리 내리막 삼십 리로 아흔아홉 구비의 험준한 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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