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창문을 내다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머! 여보, 눈이 와! 무심코 돌아보는데 물 나간 바다처럼 거실이 휑하다.

달력 앞에 서서 날짜를 헤아려보고, 세어본다. 그를 천주교 묘지에 묻고 온 지 꼭 육십이일 째였다. 

아침 8시 반에 출근해서 저녁 7시면 어김없이 들어오던 남편이었다. 퇴근길에 산 빵이나 과일 등 주전부리를 담은 봉지를 내밀며 그동안 잘 있었어? 다정한 눈빛을 보내던 남자였다. 그냥 그랬지 뭐, 오늘이라고 뭐 특별날 게 있겠어? 나는 부러 시큰둥하게 맞이하곤 했다. 고작 그런 게 사랑표현인 줄 알았던 그였다.

외손녀가 제 에미와 현관에 들어섰다. 할머니 나 모자 떠줘. 안방에서 뜨개실을 질질 끌고 나온다. 남편은 이 아이를 데리고 노는 재미에 세월 가는 줄 몰랐다. 번쩍 안아 무동을 태워주고 책도 읽어주었다. 유치원에 다니게 되자 자전거를 밀어주고, 배드민턴도 가르쳤다. 배드민턴을 곧잘 친다며 영재로 기르자고 야단법석을 떨곤 했다. 요즘 아이는 찰떡처럼 붙어 다니던 할아버지를 찾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딸의 눈 밑에 그늘이 보였다.

아빠는 약주도 즐기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셨는데…. 영정사진을 들여다보며 딸이 한숨처럼 말했다. 좋은 옷 한 벌 못 사드리고… 사진 속 아버지, 말끔하니 참 좋아 보이지 엄마? 그렁그렁할 눈을 서로 피한다. 여행 가는 걸 그렇게나 좋아하시더니. 그예 하늘나라 가서 그리 보고 싶다던 할머니랑 같이 계실까?

배에 자꾸 가스가 차네. 소화도 안 되고. 그때만 해도 봄이라 입맛이 없나보다 했다. 산에서 주워온 도토리로 묵을 쑤어주고, 봄나물을 캐다가 버물버물 무쳐도 주었지만 먹는 게 영 신통치 않았다. 얼마 전 건강 검진에서 다 정상이라 했는데…. 그냥 가벼운 소화불량이겠지 했다. 헌데 새로 한 혈액검사 결과지를 판독하던 의사의 얼굴색이 변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랴부랴 대학병원을 찾았다. 췌장암 말기, 귀를 의심했다. 오히려 그이가 침착하게 얼마나 남았나요? 물었다. 글쎄 길어야 일 년… 장담은 못 합니다. 다리가 후둘 거리는 나를 그이가 부축했다.

그의 나이 69세였다. 막내아들이지만 한동안 치매를 앓고 있던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자식들이 결혼한 후에는 손주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이제 좀 한가해졌으니 툴툴 다 털어버리고 신혼 때처럼 우리 둘이 여행이나 자주 가자,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항암제를 맞고 와서 한숨 돌릴라치면 그이는 등산 가방을 챙겼다. 집에 있으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 답답하니 산에나 갈까? 공기 좋은 곳에 다녀오면 힘이 날지도 몰라. 그는 식은땀에 흠뻑 젖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가장의 뒤를 따르며 그가 짊어지고 온 삶의 무게를 가늠했다. 그는 암 환자가 흔히 겪게 된다는 부정, 불신, 절망 등의 정서적 고통을 내비치지 않았다. 자신 속으로 침잠한 듯 묵묵하기까지 했다.

항암제가 똑똑 그이의 몸에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무작정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우리도 종교를 가지면 어떨까? 수녀님의 기도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져…했다. 그날로 신부님 앞에서 가톨릭 신자가 되길 서약했다. 그는 하얀 털북숭이 강아지를 구해 와 내게 안겨주었다. 강아지를 돌보며 혼자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여수에 사는 아들네 집에도 일박이일로 다녀왔다. 그는 언제 작성했는지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워 나가고 있었다.

살면서 티격태격한 사연들은 모두 하얗게 지워졌다. 그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활짝 웃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기도도, 신약(新藥)도 남편의 생명을 연장해주지 못했다. 아버지가 꿈에 오셔서 내 손을 덥석 잡으시데. 남편의 말이 촛불에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들렸다. 호스피스 병동 창밖에는 이제 막 단풍이 번지고 있었다.

내가 먼저 가서 미안해. 예쁜 당신 두고 가는 게 제일 마음 아파. 내 병수발까지 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 당신 보내고 하루만 더 살고 따라가려고 했는데… 여보, 너무 오래 슬퍼하지마. 건강 잘 챙기고….

그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시누이가 이쁜 올케 여기 있으니 눈 좀 떠보라고 하자 거짓말처럼 눈을 번쩍 뜨더니 나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순이 언니가 손수건을 꺼냈다. 서로의 마음 바닥을 투명하게 내보이며 살아온 우리는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다. 언니의 슬픔은 고스란히 내게도 전이되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그이가 날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어. 안아주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어. 순간 영화 <사랑과 영혼>이 떠올랐다. 영혼이 정말 영화 속 장면처럼 연인의 곁에 머물 수도 있는 걸까? 영화가 현실이 되어 언니의 독백이 그 숨결에 가 닿을 수만 있다면! 죽음과 삶의 간극이 마치 종이 한 장 차이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그이가 신었던 헤진 등산화가 아직도 현관에 턱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아. 저걸 신고 나설 때마다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언니의 마른 어깨가 들썩였다.

내가 제일 외로울 때가 언젠 줄 알아? 의사가 진료하다 말고 방귀 뿡 뀐 거 당신 생각나? 요 앞 도로에 횡단보도가 생겼어. 전처럼 힘들게 돌아가지 않아도 돼… 이런 사소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거야. 잘해, 떠나면 아무것도 아니야. 

눈물을 지우고 나면 또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모두 순간의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짧은 겨울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내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