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임진왜란 때 망했어도 싼 왕조가 백성들의 가녀린 충정을 링겔처럼 맞으며 500년간 생명을 이어오다가 드디어 1910년 일본에게 망했습니다. 그러면 충성의 대상을 잃어버린 백성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다른 왕조를 섬겨서 대리충족을 하면 되는데 문제는 그 다른 왕조가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이라면 어떨까요? 이 희한한 질문에 대한 답이, 대한제국이 망한 후에 나왔습니다. 오랑캐들이 우리를 자신들처럼 아껴주고 위로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백성들은, 믿을 건 자신들 뿐이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리고 외국을 배척하고 자신들끼리 뭉치려는 관성을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민족주의입니다.

민족주의는 일제 때부터 독립운동에 중요한 에너지로 작용해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탄압하는 외세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잃은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독립을 하여 새로운 나라의 꼴을 갖춘 뒤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민족주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통치 이념만이 남죠. 그리고 그 이념은 대부분 갈등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념의 슈퍼마켓인 정치권은 언제나 시끌시끌합니다. 우리 민족의 대동단결을 외치는 목적은 그 밖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국수주의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국수주의는 외국으로 향할 경우 제국주의가 됩니다. 제국주의의 말로는 일본과 독일의 경우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국민유화책으로 1980년대 이후 등장한 민족주의 열풍은 여러 모로 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일본과는 독도 문제로 민족주의 감정이 현실화 정치화 되고, 중국과는 역사와 강역 문제로 점점 민족감정만 악화되어, 결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고구려 유적을 명나라 식으로 복원하여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정책은 소유권 강조와 사실 왜곡이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합니다.

오늘을 사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이 민족주의 문제를 모른 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자료를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문제가 발생하여 말썽을 피우면 그것에 참여하는 찬성과 반대 어느 한쪽에 눈과 귀가 쏠려서 정작 그 문제가 왜 발생했는가를 모르고 에너지만 낭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 문제를 어떻게?접근할까 하는 고민을 할 때 이 책이 나타났습니다. 이 책은 민족주의가 어떻게 해서 발생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추적한 책입니다. 두 나라 사이에 낀 약소국의 백성들이 어떤 감정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규정하려 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한 책입니다. 제목에서 보듯이 갑오경장 이후 대한제국이 망하고 3·1운동이 일어나는 격동기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듬어서 민족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작용했는가 하는 것을 정리한 역사책입니다.

앙드레 슈미드는 우리나라 근대사를 전공한 미국인입니다. 우리나라에 작용하는 민족주의 심리가 외국인의 눈에는 신기하게 비쳤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우리 자신을 외국인의 눈을 빌려서 보는 기분이 참 묘합니다. 우리가 잘 못 보는 부분이기에 외국인의 눈에 더 잘 비쳤을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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