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에서나 항상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게 된다.

이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항상 공존하며 사회의 수레를 돌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면이 우세할 때에는 사회가 편안하고 발전적 과정을 밟는 한편,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혼란과 국론의 분열 등 사회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퇴보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단순한 기준을 현재 우리사회에 비춰 볼 때 가히 우려스러울 정도의 부정적 측면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의 한 두 사람의 통치권자나, 지배세력 혹은 특정집단에 의해 사회의 위기요소가 대두되어 왔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중심을 잡고 있어 그래도 국론의 흐름이 유지돼왔다.

물론 민주화의 과정에서 알 권리, 볼 권리가 제약된 상태에서 정확한 민심의 표출이 어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유교적인 사상을 근거로 적어도 참을 줄 알고 할말을 아끼면서 미래를 기다리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회적 독소를 희석시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사회는 말하는 사람과 집단만 존재하고 듣고 이해하며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사회가 됐다.

국가의 통수권자는 물론 국정을 담당하는 행정 관료에서부터 어느 집단이든 말 못해서 안달이 아닌 곳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에서 어떤 정책하나만 발표돼도 관련 단체는 집단 농성과 탄원, 그리고 헌법소원으로 이어지지가 일수이고, 정치권에서는 서로의 잘못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논리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며, 근로사업장에서는 경영자와 근로자는 오직 이윤만 추구하는 집단과 권익만 우선하는 집단이라는 상호인식 속에 끊임 없는 대립의 각만 세우고 있다.

이는 사회에서 가장 순수해야하는 교육현장에까지 그대로 적용돼 그저 묵묵히 학생교육에만 신경 써도 모자랄  판에 교육시스템을 자기식으로 바꿔야만 마치 진정한 교육자가 되는 착각 속에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체실험을 하고 있다.

이런 자기중심적 언어만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서로간의 감정으로 치닫기 일수여서 국민화합은 요원하게 되고, 이는 곧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돼 정말 서로에게 힘든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든 구성원이 망각하고 있다.

사실 우리와 같이 지리학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 샌드위치처럼 끼인 나라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임을 인식해야한다.

앞서가는 나라는 그저 따라오는 상대만을 살피면 되고, 후발세력은 그저 앞만 보며 달려가면 되지만, 우리는 앞선 자의 경계, 그리고 따라오는 자들의 시기 속에서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가 따라 잡아야 할 미국에서는 주 5일 근무에서 오히려 6일로 근로시간을 자발적으로 늘리고 있고, 쿠웨이트에서는 국가경영의 성공을 국민들에게 돌리면서 화합을 위해 전국민에게 포상금을 주며, 일본에서는 앞으로의 백년을 위해 대학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교육의 질적 향상은 물론 사제간의 관계가 더욱 엄격하게 만들어 교육의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런 경쟁국들의 노력은 긍정적인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도 이제부터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낮추는, 그리하여 사회적 시너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힘들게 이룩한 우리사회와 경제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황 재 훈  <충북대 공과대학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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