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나의 소원은 오송역에서 기차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러시아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에서 이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한라산 꽃비가 금강산 너머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으로 피어나듯이 그날은 꼭 와야만 하고 오리라 믿는다.    

초등학교 시절 삐라(북한의 대남 선전 전단)를 주어 학교에 가져가면 공책이나 연필을 받았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삐라를 주우러 다녔다. 신기하게도 삐라는 쉽게 발견되었다. 봄이 되면 반공 포스터를 그렸고 만화영화 ‘똘이장군’에서 멧돼지로 변하던 김일성의 모습을 그린 아이도 있었다. 평화의 댐 조성을 위해 돈을 걷기도 했는데, 금반지를 가지고 온 아이도 있었다. 선거철이 되면 북에서 간첩이 넘어왔고 운동장 화단에 우뚝 서 있던 이승복 동상처럼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다.

이제 학교에서의 반공교육은 사라졌다. 더 이상 반공이데올로기가 정치이념으로써 힘을 발하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이승만 정권 이후 우리 사회는 친일파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채 오로지 반공, 빨갱이 몰이에 혈안이 됐다. 성과를 내기 위해 작성된 서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는가. 보도연맹 사건, 4·3제주항쟁 등은 우리의 뼈아픈 역사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대북특사단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쪽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대화가 필요하다.

1945년 8월 기나긴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의 꿈은 남과 북, 두 개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깨졌다. 하나의 나라를 꿈꾸며 북으로 향했던 많은 이들의 노력도 물거품이 됐다. 결국  김일성 정권은 무력 통일을 꿈꾸며 전쟁을 일으켰다. 1953년 7월 27일 전쟁 휴전협정으로 남과 북은 60여 년의 세월 동안 적이 됐다. 그간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북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있었고 금강산 관광개발, 개성공단 조성 등의 교류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 휴전국이다. 남과 북의 가깝고도 먼 간극은 점점 깊어가고만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남북여자하키단일팀을 포함해 북측 선수단과 응원단이 떠나던 날, 그들의 눈에 흐른 뜨거운 눈물은 어떤 이념으로도,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막을 수 없는 평화의, 통일의 염원이었다. 자기들의 이권이 우선인 권력자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은 평화를 바라지 않는다. 평화와 전쟁의 문제는 곧 권력과 돈의 문제이므로,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세계 평화의 기치 아래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날에도 시리아에선 포탄이 떨어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통일의 그 날은 일부 권력자의 손으로, 일부 강대국의 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통일은 마주 잡은 손으로부터, 마주 보는 눈으로부터,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듣는 가슴으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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