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그 남조선 아들 말 없네?”

“저~ 실은~~~~~”

“무슨 말인데 그렇게 뜸을 들이네? 날레 말하라.”

인민체육부 대남 담당 총괄국장이 실무 책임자를 불러놓고 남측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남조선 언론들이 일제히 비판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네다. 남한은 북한의 꼼수에 말려들어 끌려다닌다며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습네다.”

“하하하 그기 우리가 노렸든 기 아니갔어?. 사실 우리가 뭐이 부족해 그 남조선 아들한테 끌려 다니갔어, 놀란 토끼눈을 해가지고 직통전화만 바라보고 있을 남조선 아들 얼굴이 선하구만”

“국장 동무! 다음 카드는 무엇입네까? 미리 말씀해주시면 안됩네까?”

“안될기야 없지만서리 미리 알면 재미없지 않갔어?”

북한은 어제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느닷없이 오늘로 예정돼있던 금강산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실무회담을 취소한다고 남측에 통보했다. 개인의 약속도 시간이 임박해서 취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것도 국가 간의 약속을 정당한 이유 없이 파기한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 유감의 뜻을 표하는 메시지를 보냈으나 그런 말에 화들짝 놀랄 위인들이었다면 아예 회담을 취소하지도 않았을 거다.

북한은 왜 금강산 이산가족상봉 실무회담을 취소했을까. 겉으로는 남한이 자신들의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 행하려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와 열병식을 평화협정 위반이라고 대서특필하는 남한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사실 속내는 달랐다.

“남한의 올림픽인가 뭔가 하는 게 2월 9일 개막한다고 했지비?”

“그렇습네다.”

“우리는 계획한대로 올림픽 하루 전인 2월 8일 날 대규모 열병식과 군사퍼레이드를 하는 기야. 그날은 우리 인민군 창건 기념일이지?”

“국장 동무 그것은.......”

“뭐이 어드래서 그러니?”

“전 세계 언론이 평창 올림픽을 주시하고 있는데 우리가 재를 뿌리면 국제적인 여론에 몰매를 맞을 수도 있습네다.”

“이보라, 우리가 언제 그깐 언론에 기죽어 살았네?”

“그건 그렇습네다. 그리고 남한 정부에서는 별 문제 삼지 않을 듯합네다.”

“그 무시기 말이네?”

“오늘 남측 청와대 발표를 보면 ‘인민군 창건일과 올림픽 개막 전야 행사 등이 겹치는 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담화를 발표했습네다.”

“거 보라. 저들이 별 수 있깐,”

“이 모든 게 탁월하신 국장 동무의 계략 아닌, 작전에서 나왔디 않습네까?. 경하드립네다.”

“야! 야! 그만하라 간지럽다. 내가 언제 그런 말 듣자고 이런 일 했깐, 그저 우리 인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물불가리지 않는 내 성질 잘 알지 않네?”

“넵, 그저 저 같은 돌대가리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우수한 두뇌를 가지셨습네다.”

“기건 기렇고, 남조선 아들 기절하게 만들 일 좀 없네?”

“한 가지 있긴 있습네다만,”

“말해보라”

“이번에는 묘향산을 저들에게 개방시켜주면 어떨까 싶습네다.”

“뭐이 어드레? 묘향산 관광을?.”

“그렇습네다. 그러면 묘향산을 보고 싶어 하는 남조선 아들이 구름같이 몰려올겝네다.”

“그래서리?”

북한은 올림픽이 끝난 다음 남한의 환대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묘향산을 일주일간 일천 명에게 무료 개방한다는 소식을 남측에 전해왔다. 정부에서는 무슨 계략이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 분석 끝에 북한의 호의를 받아드려 관광객 모집에 나섰다. 모집 1시간 만에 무려 25만여 명이 몰려 250대 1일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불러왔다.

묘향산의 봄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없었다. 온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와 철쭉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고 저마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그 옛날 천재 시인 묵객들도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할 말을 잃게 했다는 기암괴석은 보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아두기에 충분했다.

“이보라요. 남한 동포 선생! 좀 쉬었다 가기요.”

북어처럼 비쩍 마른, 통 넓은 바지에 나일론 점퍼를 걸친 50대 북한 남성이 경치에 취해 넋을 놓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남한 관광객에게 접근해왔다. 손에는 북한산 담뱃갑 ‘능라도’가 들려있다.

“아! 예 고맙습니다.”

“묘향산! 볼만 하디요?”

“예, 너무 아름다워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네요. 감탄 그 자체입니다.”

“그렇습네까?. 우리는 매일 봐서 그런지 별 감흥 없습네다. 담배 한 대 태우시라요.”

사내가 담배 한 개비를 내밀며 동시에 라이터를 켠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북한 담배 맛이 어떨까 하는 호기심과 그 정성에 받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친근한 모습이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를 어쩌지요. 저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데요.”

“무시기 남조선 사람들은 담배 못 피우는 사람이 어찌 그리 많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까지 한 열사람 권했을 거우다. 하지만 한 결 같이 피울 줄 모른다 하지 않슴메. 이런 낭패가 어디 있단 말이오?”

“낭패라니 그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게 있수다.”

사내는 휭하니 자리를 떠나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로 간다. 하지만 담배를 받아 피우는 사람이나 술을 마시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보라. 남조선 아들 하나도 걸려들지 않았네?”

“면목없습네다. 국장 동무!

“남조선 아들은 경치가 좋거나 기분이 좋으면 음주 가무를 즐기며 흡연을 한다고 하지않았네. 우리는 뒤에서 그 영상을 찍어설랑 돌아가지 못하게 묶어놓고 왕창 벌금을 때린다고 했지비?”

“죄송합네다. 그 남조선 아XX들이 그렇게 공공질서를 잘 지킬 줄은 몰랐습네다. 용서해주시라요.”

“그긴 문제없습네다고 말한 게 누구네?. 우리 아이들을 풀어 놓고 분위기를 띄운 다음 담배도 한 대 씩 권하고, 예쁘장한 우리 여성 동무들을 시켜 술도 한잔 씩 권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얼간이 같은 남조선 아XX들은 십중팔구 걸려들 게 뻔하다고 말한 게 누구네?”

“죄송합네다. 정말 죄송합네다. 살려 주시라요.”

“동무는 우리 인민공화국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지비. 남조선 아XX들 멕이고 재운 그 돈 어칼레? 동무는 총살감이야 총살!” 

그날 이후 살기등등하던 대남 총괄국장의 모습이나 엎드려 살려 달라고 애걸하던 황철상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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