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균  < 논설실장 >

바야흐로 충청권 전체가 신행정수도에 결박당한 형국이다.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충청권은 패닉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대손손 중앙정부로부터 차별과 소외를 받아왔다고 확신하던 차에 난데없이 신행정수도라는‘그림의 떡’을 실제로 주겠다고 나선 초인(超人)이 있었으니 이 기쁨을 주체할 감정의 총량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충청도 사람들은 새로운 지배세력이 터를 잡는 행정수도의 주체시민이 돼 잘 사는 꿈을 꾸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신행정수도 건설을 기정사실로 믿었다.

행정적으로 같은 충청도라는 점과 지리적으로 인접해있다는 점 때문에 이른바 배후지 효과를 노리며 덩달아 기대에 부풀었던 충북지역의 실망과 분노 또한 정작 후보지였던 연기ㆍ공주에 못지 않았다.

명민성 떨어지는 위헌 결정

나아가 신행정수도를 빼앗긴 것처럼 금단현상을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이 왜 위헌으로 결정 났는지에 대한 분석에서는 명민성이 떨어진다.

신행정수도 건설에 수도권과 한나라당, 그리고 일부를 제외한 중앙언론이 공공연히 반대해 온 사실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하지만 이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헌재가 덩달아 위헌결정을 내렸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행위는 헌법기관인 헌재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신행정수도에도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헌재가 보수적이라느니, 정치적이라느니, 탄핵을 해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들은 실망감에 따른 격한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어도 국민적 동의를 받기는 곤란하다.

그렇게 보수적이고, 정치 편향적이며, 탄핵받을 만큼 형편없는 헌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헌법소원을 기각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참에 상황악화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여야가 상대방에게 삿대질을 하고, 청와대와 정부는 헌재에 원망이나 하는 식으로는 신행정수도는커녕 그 보다 못한 정책도 제대로 실행하기 어렵다.

또 직접 이해당사 지역도 아닌 배후지라는 간접효과에 만족스러워 하는 충북의 도지사에게 당적을 정리할 각오로 신행정수도에 매달리라고 요구하는 집권당 국회의원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충청권 출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당적은 물론 의원직을 걸고 야당과 수도권을 설득해야 옳지 도세 약한 충북도지사에게 종주먹을 대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엄밀히 따져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없다.

아무리 좋은 대안을 모색하더라도 그것은 헌재의 결정을 수용한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충청권 민심으로야 헌재를 곱게 볼 리 만무하지만 이제는 대안을 찾는 수 밖에 없다.

신행정수도 건설이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의 유효한 수단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오로지 신행정수도만이 유일무이한 지상명제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비약이자 현실성이 결여된 분석이다.

게다가 지역적으로 충청권을 제외한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이야말로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인 양 인식하고 있는 커다란 간극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지역발전 위한 대안 모색해야

단군이래 최대규모의 국책사업이랄 수 있는 신행정수도 건설 과정에서 국민적 동의를 받지 못한 채 충청권만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미안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얘기다.

지금이라도 충청권은 신행정수도의 결박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충청권 가운데서도 충북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때로는 슬픔도 힘이 된다지만 원망은 증오를 낳고, 증오는 분열을 잉태하는 폭약이다.

충청권은 헌재와 신행정수도 반대 세력을 향한 원망을 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용어가 신행정수도는 아니더라도 역사적 차별과 정체된 지역발전, 그리고 지방분권이라는 효과도 얻을 수 있는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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