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설에 들른 친정에서 엄마는 할 말이 있다며 나를 주방으로 불렀다.

 

 

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시고 이젠 재산을 정리 하고 싶다고 하셨다. 1남 4녀에게 골고루 분배를 하겠노라며 어디 있는 것은 누구를 주고 어디 있는 것은 누구를 주려고 생각해 놓았다고 했다.

사실 나는 친정 부모님 유산을 기대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재산이 생겼으니 응당 기분이 좋아야 했지만 기쁨보다는 가슴 한쪽이 시큰 하게 아려왔다.

마당 끝 언저리에서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봄날이 되면 엄마 아버지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햇살 좋은 날, 온 마당 한가득 하얗게 출렁이던 국수 가락은 부서질 듯한 봄 햇살 아래서 한나절을 지나고 나면 빳빳한 자태로 변했다. 키를 맞춰 한 묶음씩 자른 후 띠를 두르면 완벽한 상품으로 창고 안에 가지런히 쌓이게 된다.

파란 트럭이 한 가득 싣고 온 밀가루가 반나절 만에 국수로 변한 것이다.

마당에서 부모님이 바삐 움직일 때 나는 대청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 침을 묻혀가며 만화책장을 넘기며 뒹굴거렸다.

부모님은 늘 바빴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골마을에서 언니, 오빠는 일찌감치 도회지로 유학을 떠났다. 집에는 중학생인 나와 초등학생인 동생 둘이만 남았다.

시골의 봄철은 똥개도 밭두렁에 나갈 만큼 일손이 부족하고 바쁘다. 그와 비례해 우리 집 국수창고에 국수는 며칠 못 가 바닥이 나고 마당에는 또 다시 하얀 물결이 넘실대는 국수틀이 가득 자리를 했다.

엄마 아버지는 늘 바깥채 방앗간에 계셨고 국수를 사러오는 손님들은 안채로 들어왔다.

새참용 국수는 하루에도 수 십 다발이 팔려 나갔다.

엄마가 바빠 안채로 못 들어 올 땐 내가 국수창고에 들어가 국수를 내어주었다.

꼬깃꼬깃한 지폐는 자물쇠가 걸려있는 돈 통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가끔 한 두장은 내 주머니로 들어가기도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매끌매끌한 지폐의 감촉을 느낄 때면 가슴이 뿌듯했다.

일명 삥땅 뜯기의 재미는 얼마못가 아버지께 들통이 나며 막을 내렸다.

부모님은 항상 검소하고 알뜰했지만 우리들에게는 풍족함을 누리게 해주셨다

딱히 쓸 곳도 없었던 돈을 왜 삥땅을 했는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난다.

겨울의 시골집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올리고 계시라 해도 괜찮다며 고집을 부리신다.

평생 몸에 밴 절약정신 때문에 보일러를 맘껏 돌릴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한여름에도 우리가 갈 때를 제외하곤 에어컨을 트는 법이 없다.

반면 나는 습관처럼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우리 집 관리비의 정확한 액수를 알지 못한다. 대충 어느 정도 란 것은 알지만 줄이려는 노력도 아끼려는 노력도 안 하고 살고있다.

개미처럼 평생을 열심히 일하신 부모님은 적지 않은 재산을 불리셨다. 쓰면서 편히 사시라해도 하루아침에 평생 굳어진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며 여전히 불편을 고수하며 살고 계신다.

부모님의 재산이 어떻게 형성 된 것인지 알기에 재산정리를 하겠다는 엄마의 말이 가슴을 헤집어 놓는 듯 아려와 설거지를 하다 말고 눈물을 찍어냈다.

성경에서 부모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할 책임을 맡은 자 ,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할 수 있는 영적 권위를 부여받은 자로 언급된다. 즉 자녀를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의 대리인 이란 표현이다.

그렇다면 자식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일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