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의 태동에서부터 미래]-‘청주=직지’ 지역적 한계성 가치 희석

문화는 ‘생명’이다. 국가를 움직이는 동력이며, 민족을 영위케 하는 양분이다. 사전적 의미로도 문화는 ‘인류의 이상을 실현해 가는 정신적 활동과 생활양식’을 총칭한다.

역사가 문화를 태(胎)로 존속돼 가는 연유다. 그렇기에 문화는 국가와 민족의 상징이자 자긍심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상징은 무엇일까. 단연 ‘직지(直指)’를 꼽는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런 문화다.

청주라는 지리적 영역 안에서 태동했지만 청주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은 직지의 성장을 옥죄는 어리석은 일이다.

직지는 한국의, 나아가 세계적으로 발현돼야 할 문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충청매일는 직지의 태동에서부터 미래까지를 조망, 직지가 갖는 문화적 가치와 발전 방향을 제시해 본다.    

                                  

▷직지의 태동
1377년 청주목(淸州牧) 인근의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 직지의 원명이다.

상·하 두 권으로 발간됐으나 현재는 하권 단 한 권만이 유일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이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직지가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 것은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뒤 프랑스 초대 공사로 부임했던 빅토로 꼴랭 드 쁠랑시(Victor Collin de Plancy)가 귀국할 때 한국에서 수집한 고서 등 골동품을 가져가는 과정에 직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쁠랑시의 물품 경매 때 골동품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가 구입했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게 됐다.

그러나 직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작 한국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세계 도서의 해를 맞아 소장하고 있는 동·서양의 고서를 전시하면서 직지가 처음 선보였고, 이듬해인 1973년 파리에서 열린 29회 동양학 국제 학술대회 때 ‘동양의 보물’ 전시회에 직지가 포함되면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냈다.

이후 지금까지 동양의 고서는 전시되지 않아 그 모습을 보기 어렵다.

직지 존재가 한국에 알려지고 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게 된 것은 두 번의 전시회를 통해 직지를 목격한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 문고실에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가 2년여동안의 연구와 고증 끝에 직지가 고려말에 간행된 금속활자본임을 확인, 사진을 찍어 한국에 소개하면서다.

이후 직지에 대한 연구와 고증이 활발히 진행됐으나 책에 기록된 청주목 흥덕사지에서 발간됐다는 내용에도 불구, 관련 기록이나 자료가 없어 흥덕사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80년대 들어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지역 택지개발 공사를 하던 도중 우연히 흥덕사 터가 발견돼 직지에 대한 고증·연구작업이 탄력을 받게 돼, 활자본의 복원과 주조법, 조판술 등 여러 영역에서 직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같은 지속적인 연구 덕에 직지를 인쇄한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당시까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아온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보다 78년 앞섰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됐고, 지난 2001년 9월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국제적 공인을 받았다.

▷직지의 가치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근본적 가치 측면에서 직지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므로써 직지는 문화·역사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부여받게 됐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문화적 가치에 국한해 직지를 조망하는 것은 직지가 갖는 내면적·파생적 가치를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직지가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임에도 청주라는 지역적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청주=직지’를 고집하는 것은 직지의 가치를 되레 희석시킨다.

직지가 청주에서 태동됐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직지를 청주만의 것으로 구속하고 이미지화하려는 것은 직지의 성장판을 옥죄는 일이다.

직지는 궁극적으로 종교적 포교를 위한 수단에서 비롯됐지만,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관찰한다면 정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지적(知的) 발명품이다.

인터넷이란 매개체가 현대사회의 정보 이용과 교류를 용이하게 하고 확대시켰다면 당시엔 출판인쇄술이 정보의 전이(轉移)와 파생을 위한 기술이었다.

출판인쇄술 가운데 금속활자기술이 평가받는 것은 사용 빈도가 많을수록 마모성을 지닌 목판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출판인쇄술은 단순히 책을 찍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출판인쇄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학습의 효과를 부여하고, 이를 응용해 또 다른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게 하는 성장동력이다.

정보산업이 미래산업의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직지가 갖는 파생적 가치를 중시해야 하는 점도 이런 연유다. 직지의 파생적 가치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직지를 주제로 한 오페라 제작, 고인쇄박물관 건립, 직지넥타이 등 문화상품 제작 등 다양한 문화 유형으로 응용되고 있다.

도시를 하나의 상품이나 기업으로 정의하는 도시마케팅에도 직지가 응용된다. 직지축제 개최나 직지거리 조성, CI 등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직지는 이처럼 근원적 가치 이외에도 어떻게 응용·활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고 무한한 파생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직지 원본이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직지를 단순히 보존을 위한 문화유산으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사실상 할 일이 없다.

보존은 현재 소장하고 있는 나라의 몫이다. 직지의 본향이 우리나라라는 점을 부각시켜 직지의 파생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직지를 돌려받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인내를 갖고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함은 당연하다.

▷직지의 미래
청주시는 직지의 세계화 전략을 마련, 추진중이다. 시는 이를 위해 모두 1천5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직지 간행 700주년이 되는 오는 2077년까지 장기적 추진전략을 마련, 직지 세계화의 거시적이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키로 했다. 

시는 사업의 효율적 추진과 직지세계화 사업 전담 추진을 위해 한시기구인 직지세계화추진단을 지난 2월 정식 출범했다. 시는 오는 2007년까지를 단기추진전략 기간으로 정하고 우선 실현가능한 시책을 발굴, 모두 100억∼2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추진할 방침이다.

시가 이미 주요 사업 계획에 포함한 직제체험학습프로그램과 국제교류프로그램, 직지관련 영상물 제작, 직지찾기운동, 직지의날 축제, 직지CI 개발·활용, 직지 서체 개발·활용, 직지상 제정, 인쇄 및 기록유산 워크숍, 직지문화의 거리 조성 등과 함께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시책을 마련, 직지의 생활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직지 관련 전문연구 인재 양성과 함께 직지전략연구소를 설립,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활동을 통해 직지의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실용화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지식문화 선진국의 연구기관과 연구인력을 청주지역에 유치, 명실공히 세계 인쇄문화와 지식정보산업의 메카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시는 올해말까지 직지세계화를 위한 세부사업을 발굴, 자체 검토를 거친 뒤 실무협의회 심의 과정에서 실행 가능성을 가려낼 예정이다. 이번 계획안은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지 않고 중·장기적인 직지 육성방안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계획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같은 청주시의 계획이 청주시만의 관심과 육성 의지만으로 그쳐선 안된다는 점이다.

직지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며, 지속 가능한 정보문화산업 아이템이란 시각에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아울러 청주시가 추진하는 각종 계획과 함께 직지의 근본적 가치와 파생적 가치가 조화를 이뤄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yahoo)나 다음(daum) 같은 포털사이트는 정보제공 기능과 함께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 정보산업의 총아다.

‘직지’를 브랜드로 한 포털사이트를 개설한다면 정보 제공이라는 직지의 근원적 가치 추구와 함께 직지의 인지도 제고로 세계화 초석을 다지는 첩경이 될 수 있다는 배경에서다.

 야후나 다음이 아닌 직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접하고, 세계가 교류한다면 직지의 이상(理想)은 현실이 된다. 문화적 가치와 파생적 가치는 실용성을 가질 때 가장 극대화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오랜 먼지를 털고 박물관 전시실을 벗어나 사람들 곁으로 다가서는 직지의 비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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