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애 두 번째 단편소설집 “손에 관한 기억” 출간
개털·소도로 간 사람들·파파라치의 가족 등 7편 수록
유년의 상처·자본과의 싸움 등 다양한 주제 담아내

 

 

“작가는 이웃이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자신에게 투영해 세밀하게 바라봐야 합니다다. 이번에 내놓은 단편들 역시 우리 공동체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모티브로 갈등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파고들어가 보았습니다.”
소설가 김정애(54)씨가 두 번째 단편집 “손에 관한 기억”(고두미/1만2천원)을 출간했다.
“손에 관한 기억”에 수록된 작품들은 표제작 ‘손에 관한 기억’을 비롯해 ‘개털’, ‘당신은 아직 오로빌에 있나요’, ‘문상객’, ‘소도(蘇塗)로 간 사람들’, ‘소설 홍명희 습작기’, ‘파파라치의 가족’ 등이다.
작품들은 사회변혁이 진행된 세기말에서 21세기를 거쳐 오는 동안 중심 층인 청·장년들이 겪은 절망과 상처, 폭력을 견디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고 모색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개인이 겪은 소소한 상처에서부터 우리사회가 만들어 놓은 뿌리 깊은 상처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이 감당해야 했던 상처가 작품 곳곳에 송곳처럼 삐져나온다. 
작품 ‘문상객’, ‘소도로 간 사람들’, ‘파파라치의 가족’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위기로 인한 개인의 파산, 가족의 해체, 그로인한 사회적 갈등의 문제를 짚었다.

 

김 작가는 당시의 사회 현상에 대해 “IMF를 겪은 우리 사회는 그 후 여러 가치기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본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모든 것의 중심가치가 자본이 됐다. 그 현상이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며 “IMF로 직접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의 터전에서 소외(疏外)된 중년의 여자들, 그리고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진 어중간한 40대의 남자들이었다.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소설을 통해 표피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밝혔다.
표제작인 ‘손에 관한 기억’은 어린 시절 손바닥에 난 상처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가슴 깊이 감추고 살다 어느 날 상처를 드러내게 되면서 해묵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다. 다기(茶器)를 만드는 도공을 만나 그의 손을 관찰하고 밤새 불구경을 하게 된 주인공(話者)은 과거의 나쁜 기억을 추억으로 변환시키는 계기를 맞는다. 도공이 만드는 다기의 제작과정이나 고향에서의 에피소드들이 손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소설 속에서 섬세한 감정의 변화와 도자기 제작과정의 디테일한 묘사는 소설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두 번째 작품 ‘개털’은 무분별한 농촌개발과 그에 따라 생존의 삶터가 훼손당할 위기에 직면한 농민의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평론가 고명철 교수(광운대 국문과)는 ‘개털’에 대해 “농민의 문제를 다루되, 농민의 삶으로부터 성찰적 삶을 발견하게 되는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김정애의 이 같은 소설은 농민문학이 지금도 통용될 수 있는, 그리하여 현실적으로 민족문학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데서 각별한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
작가의 실제 인도 오로빌 생태공동체 여행담을 모티브로 한 ‘당신은 아직 오로빌에 있나요’는 사람의 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여행 중 장편소설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던 작가 K는 전직 영어교사였던 J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자신과 다르게 살아온 J의 이력에 빠져들게 된다. K는 J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어린 시절 성적인 수치심 때문에 몸이 경직돼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몸과 정신의 상관관계를 고민하고 가치관의 변화를 겪으며 전혀 다른 삶을 좇아가게 되는 이야기다.
“육체를 이야기할 때  작가는 단순히 건강을 얘기할 수는 없죠. 돌이켜보니, 정신이 더 중요하다며 몸을 천대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왠지 저급한 생각이 들었죠. 우리 몸이 느끼는 여러 감각들이 실제 정신을 지배할 만큼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과정입니다. 그런 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충북 괴산에서 출생해 걸작 대하소설 “임꺽정”을 남긴 ‘홍명희’라는 인물을 모티브로 쓴 ‘소설 홍명희 습작기’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가장 커다란 갈등구조인 ‘이념’으로 덧씌워진 폭력을 고발한 이야기다.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북을 택한 홍명희라는 인물로 인해, 먼 친척벌인 등장인물들이 겪은 ‘불합리한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형인 석규는 홍씨 집안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선한 일이 왜곡되고 변질돼 정당하지 않은 폭력으로 희생된 동생 석주의 죽음으로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되지만, 결국 정의롭지 못한 폭력을 ‘비웃음’으로서 극복해간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작가로서 남북문제와 수십 년 지속된 이념적 갈등은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루빨리 불필요한 갈등이 막을 내리는 일이지요. 그동안 기관이라는 조직은 수준 높은 독서모임만 갖고도 빨갱이라고 몰아세울 만큼 엄혹했죠. 실체가 없는 ‘이념’을 내세워 수많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들의 상처는 엄청난 것이지요. 이제 이념을 앞세운 무차별 폭력은 사라져야 할 때입니다.”
김 작가는 단편소설 “개미 죽이기”로 허난설헌 문학상을 수상하고 작가활동을 시작한 이래 첫 작품집 “생리통을 앓고 있는 여자”를 출간한바 있다. 청주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역일간지 문화부기자를 거쳐 충청매일에 재직 중이다. 한국작가회의와 충북작가회의 소설분과 회원이며 미술 산문집 “세상은 놀라운 미술선생님”, “우리 옛 그림의 마음” 등을 출간했으며 최근 미호천 물길을 답사한 다큐 이야기 “미호천”을 내기도 했다.  
 최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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