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 수필가

 

 

열두시가 넘도록 들어오지 않는 딸애를 기다리며 애태우다가 선잠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였다. 딸애 걱정에 거실로 나갔는데 화장실 앞에 딸애의 옷이 널브러져 있었다. 두드려도 대답이 없는 화장실 문을 열자 변기 위에서 딸애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속옷만 입고 앉아 잠든 모습을 보니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 기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평소 딸애의 모습에서 전혀 상상을 못 했던 일이라 당황스럽고 어린아이 같기만 하던 딸애의 술 취한 모습에 새삼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작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한 딸애가 친구들을 만나면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 대학 동창인 친구 세 명이 나란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같은 일을 하니 자연히 자주 뭉치게 되는 것 같다. 여자 셋이 모이면 한 명이 불편해진다는 편견을 깨고 딸애 친구들은 셋이서도 아주 잘 지낸다. 모여서 여행도 다니지만 모이는 의도가 술을 마시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이 더 재미있다.

딸애가 처음 술 마시는 것을 본 것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다. 신입생 환영회에 갔던 딸애는 거의 실신하다시피 업혀 들어왔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탓인지 선배들이 주는 대로 받아마시고 쓰러진 것이다. 이제는 나이도 먹고 직장을 다니니 그러려니 하지만 그때만 해도 딸애가 술을 마실 줄 안다는 것이 내겐 큰 충격이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술을 이기지 못해 변기를 부여잡고 앉아 힘들어하는 딸애를 보니 오래전에 내가 술 때문에 겪은 일이 떠올랐다.

딸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 무렵이었다. 서른 살이 되도록 술이라곤 막걸리 한 모금도 못 먹던 내가 언짢은 일로 집에 있는 양주를 머그잔으로 반 잔가량 마셨다. 아니, 반 잔을 마셨는지 한 잔을 마셨는지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없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술을 그것도 독한 양주를 마셔 아침에 일어날 기운도 없었다. 전날 남편이 늦게 돌아오니 방안 구석구석 토해놓아 옷을 세 번이나 갈아입히고 이불도 새 이불을 꺼내 덮어주었다고 했다. 그러고도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얼마나 토했던지 나중엔 초록색의 쓴 물까지 넘어왔다.

다음날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전날 밤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기억이 없는데 남편은 그렇게 괴롭고 힘들면 말을 하지 그랬느냐며 속상해했다. 술주정을 많이 하긴 한 모양인데 먹지도 못하는 술을 먹어 고생하느냐는 말만 할 뿐 남편은 전날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겁 없이 마신 독한 술 때문에 보름 정도는 고생했다. 워낙 몸이 안 좋을 때였기에 몸살로 위염으로 옮겨와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했던 것 같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 남편한테 정식으로 술을 배우게 되었다. 부부동반으로 모인 자리에 가서 나만 술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해 보였나 보다. 저혈압이니 술 한 잔씩 하면 건강에 좋다며 자꾸만 권하는 남편과 함께 마시다 보니 술이 늘었다.

처음 얼마간은 견디지 못해 술상 앞에서 바로 쓰러져 자기가 일쑤였는데 어느 사이에 내 몸이 술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늦게 배운 내 주량이 술을 못 마시는 남편을 뛰어넘었다. 식사할 때도 홀짝홀짝 한 잔씩 하고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와인을 한 잔씩 마신다.

남편이나 나나 술을 전혀 못 하는 것으로 아는 바깥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술 공장과 친한 친구를 둔 인연으로 우리 집 베란다엔 언제나 술이 상자로 놓여 있다. 내가 한 잔씩 술을 마신다는 것을 안 남편의 친구는 우리 집에 술만 떨어지면 어느새 알고 술이 앉았던 빈자리를 채워준다.

나는 가끔 날씬하게 빚어 올린 목이 긴 유리잔에 얼음을 채우고 포도주에 과일을 칵테일하여 나만의 술을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그리고 혼자만의 분위기에 취해본다. 사실 난 술을 마시는 것도 좀 우아하게 품위 있는 곳에 가서 마시고 싶다. 술을 마시는 즐거움보다는 음미하며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

결혼 30년 차가 되었고 어느새 쉰 중반을 넘기고 나니 술을 왜 마시는지 이젠 좀 알 것 같다. 술을 마시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적당히 오르는 취기와 함께 텅 빈 가슴에 남아 있는 여백을 메워주는 감미로움을 남들은 알지 못할 거다.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가끔 남편과 술잔을 기울인다. 알코올이 한 방울만 들어가도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남편과는 반대로 난 술을 마셔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마실수록 더욱 창백해지는 얼굴 때문에 사누들은 날 보고 주당이라고 놀린다.

가끔은 술이 아스피린처럼 진통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떤 날 마시는 술은 사람을 용서하게 하고 어떤 날 마시는 술은 얼어붙은 내 가슴 저 밑바닥까지 훈훈하게 녹여주기도 한다. 술 한 잔을 나누며 용서를 구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술 한 잔을 나누며 가까이하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다른 빛깔의 그리움과 고통으로 술잔을 섞을 수는 없지만, 가슴에 전해지는 알코올의 따뜻한 온기가, 비어 있는 서로의 가슴에 허전한 쓸쓸함을 채우기는 충분하다. 요즘은 탄산이 강한 백포도주 맛에 푹 빠졌다. 그리고 아무 격식도 허물도 없이 같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친구 같은 딸애가 있어 좋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공감대를 나누며 같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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