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730년 당(唐)나라 현종(玄宗) 무렵, 여옹(呂翁)의 본명은 여동빈(呂洞賓)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도사라고 불렀고, 후세 사람들은 그를 신선이라고 칭했다. 하루는 여옹이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 이르러 어느 주막 마루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허름한 차림의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가 들어와 여옹 옆에 앉았다. 점심시간이 한참을 지난 후라 젊은이는 주모를 불러 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그런데 주모가 마침 밥이 떨어져 이제 막 밥을 얹혔으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젊은이는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여옹과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의 인생이 불우하고, 하는 일도 잘되지 못하고, 매사에 불운이 가득하다고 한참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여옹은 그저 묵묵히 노생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잠시 후 노생이 하품을 길게 늘어놓더니 마루에 누웠다. 여옹이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베개를 노생에게 건네주었다. 노생이 베개를 만져보니 양쪽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궁금하여 그 구멍을 들여다보았는데 점점 구멍이 커지는 것이었다. 신기하여 그 구멍 속을 구경하고 싶어 들어갔다. 들어가고 보니 어느 훌륭한 기와집 마당이었다. 집주인은 최씨라는 부자였다. 노생을 귀하게 여겨 자신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다. 노생은 아내의 도움으로 학문에 전념하여 진사시험에 합격하였다. 벼슬에 오르자 운이 좋았는지 중간관리를 거쳐 이부시랑에 이어 어사대부에까지 올랐다. 인생이 너무 잘나갔다. 그런 탓인지 모함을 받아 변경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재상에 올라 천자를 보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모함을 받아 이번에는 모반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벌레가 우글거리는 감옥에서 그는 젊은 시절의 자신의 소박한 꿈을 떠올렸다.

“아, 고향에서 농사나 지으며 아내와 자식과 정겹게 살고 싶었는데!”

자신이 먼저 죽지 않으면 가족 모두가 멸족한다는 말에 그는 자결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아내가 조금만 참으라며 눈물로 호소하자 이내 그만두었다. 몇 년을 옥에서 고생한 끝에 무죄로 판명되어 다시 벼슬에 올랐다. 천자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중서령 벼슬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그는 나이 70세에 이르러 아들 다섯과 손자 열 명을 두고 행복한 나날을 살다가 생을 마칠 무렵이었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노생은 눈을 떴다. 언뜻 깨어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 아직 밥이 다 되지도 않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으나 꿈은 일생을 살았던 것이다. 노생은 너무도 기이하여 여옹에게 물었다.

“제가 지금 꿈을 꾸었는데 마치 현실처럼 너무도 생생했습니다.”

그러자 여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 모두 꿈과 같은 거라네.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게나.”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길을 떠났다. 당나라 때 심기제가 쓴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단지몽(邯鄲之夢)이란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이다. 인생의 부귀영화는 한바탕 꾼 꿈과 같이 덧없고 허무하다는 의미이다. 무술년에는 독자 여러분 모두가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작은 것이라도 베풀며 살기를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