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들, 그런 얘기가 다 무슨 소용이오? 지금은 모두들의 생각을 하나로 모아도 해결책을 찾을까 말까한데. 그러니 조금만 참고 뜻을 모아보십시다!”

최풍원이 두 사람을 말리며 임방주들의 의향을 물었다.

“우리 모두가 수결을 하고 그걸 윤 객주에게 전하면 어떨까유?”

광의임방 김길성이 다른 임방주들에게 수결을 하자고 제의했다.

“수결은 어떤 수결을 말하는 거여?”

“신표를 보여 달라고 한다니, 각자 가지고 있는 재산물목을 쓰고 거기에 수결을 해서 윤 객주에게 넘겨주면 우리를 믿고 쌀을 내줄 수도 있지 않겠수?”

“어험이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여?”

김길성의 말을 받아 양평임방 김상만이가 물었다.

김길성이 말하는 수결은 수결도 아니었다. 본래 수결은 어떤 문서 끝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 자신만 알 수 있는 글자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글자를 알지 못하는 대다수 백성들은 그곳에다 점을 찍거나 한일자를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수천 명 고을 사람들이 수결한 모양이 그놈이 그놈이니 전혀 수결로의 의미가 없었다. 관아나 지주들은 고을민들의 까막눈을 이용해 갖은 도둑질을 일삼았다. 쌀 한 말을 빌려주고는 두 말 서 말을 내주었다고 적어놓거나, 도지를 전부 받아가 놓고는 반만 받아간 것처럼 적어놓고 붓에 먹물을 찍어 장부에 표식을 하라고 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따져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들은 니들이 직접 장부에 이렇게 수결을 해놓고 무슨 소리냐며 장부를 내밀었다. 특히 관아에서는 흉년에 대비해 비축해둔 양식이나 나라에서 배곯는 백성들을 위해 내려 보낸 구휼미를 떼어먹고는 장부를 조작해 고을민들에게 전가해 뒤집어씌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글자를 알지 못하는 까막눈이 원수였다.

“수결이야 관가에서 쌀 빌려먹을 때 치부책에 칠해봐 알겠지만, 어험은 또 뭐유?”

“내가 한양을 오르내리며 보니 거기 큰 목상들은 돈이나 물건으로 값을 치루는 게 아니라 종이에다 뭘 써서 서로 주고받더구먼. 그게 어험이라는 건데 일단 그걸로 나무 값을 치루고 나중에 돈을 받는다 하더구먼.”

지금은 양평에서 북진본방의 임방을 하고 있지만, 본래 뗏목꾼이던 양평의 김상만 임방주는 조선팔도에서는 가장 번성한 한양을 오가며 보고들은 것도 많았다. 평생을 살아도 한양 구경 한 번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는 백성이 대다수인데 김상만은 일 년에도 십 여 차례씩 한양 물을 평생을 먹었으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당연히 세상일에 밝을 수밖에 없었다.

어험은 다른 말로 음표라고도 했다. 어험은 일종의 지전, 즉 종이돈이었다. 그러나 나라에서 발행한 공식적인 통용화폐가 아니라 개인들이 필요에 따라 사사로이 만들어 유통하는 사전인 셈이었다. 나라에서 상평통보를 만들어 통용하기 시작한지 이백 년이 지나자 전국적으로 엽전 사용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시골의 작은 향시나 행상들 같은 소규모 장사꾼들 사이에서는 물물교환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웬만한 군소 장시에서는 편리한 엽전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거래가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대량의 물산을 거래하는 거상들은 수십·백 관이나 되는 물품 대금을 무거운 엽전으로 지불하기가 어려웠다. 그 정도 엽전이면 사람이 지게에 질 수도 없고 나귀의 등에나 싣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양이었다.

최풍원도 언젠가 우갑 노인을 따라 향시를 따라 다닐 때 나귀에 돈 쾌를 싣고 다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도 최풍원은 엽전을 나귀에 싣고 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주머니에 넣을 돈도 없는데, 나귀에 실은 돈 쾌를 보고 그저 부럽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자신도 언젠가는 저렇게 나귀에 돈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는 거상이 되고 싶었었다.

어험은 처음에 서로 믿을 수 있는 상인들 사이에서만 신표로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거상들과 객주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통용되고 있었다. 물론 최풍원 같이 통틀어야 수 백 냥 밖에 되지 않는 장사꾼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어험은 종이에 거래하는 양의 돈을 적고, 날짜와 빌려가는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또 언제 지급할 것인지 약속 날짜를 적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는 언제든 어험을 지니고 있는 자가 발행한 사람에게 요구하면 지불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기한은 보통 장날과 다음 장날까지 한 파수나 두 파수가 상례였으며 길어도 두 달을 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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