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신덕기 임방주도 윤 객주 심정을 십분 이해하겠다며 당연해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내가 임방주들께 하는 말이요. 어쨌든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쌀을 얻어가야 합니다. 우리 본방과 임방들에게는 이번 일이 앞으로 청풍에서 상권을 틀어쥐게 될 큰 계기가 될 것이오. 그러니 우리 모두가 뜻을 합쳐 윤왕구 객주에게 온 힘을 다해 부탁을 해봅시다!”

최풍원이가 임방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오. 물건도 외상으로 가져다 팔고 갚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언제 갚게 될 지도 모르면서 쌀까지 달라고 하려니…… 그것도 한두 섬도 아니고 쉰 섬이나 되는 쌀을…….”

신덕기 임방주는 못내 께름칙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 어쩌겠소.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다급한 것은 우리니 우리가 무슨 수를 내야지.”

박한달이 주눅이 들어있는 임방주들을 독려했다.

“긴 겨울에다 춘궁기가지 겹쳐 시장 매기가 떨어졌지만 봄이 되면 지금보다야 사정이 나아질 것이오. 그러니 방법을 강구해 봅시다!”

김상만도 임방주들을 부추겼다.

“그건 그 다음 일이고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난감한 일 아니오?”

“해결할 방법은 쌀값을 주고 사가는 것인데 그것은 지금 상태로 불가능한 일이니 논의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봅시다.”

“돈도 안 주고 남의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소!”

“그러게 말이요.”

여러 임방주들이 각기 떠들어댔지만 문제 해결은커녕 공전만 될 뿐이었다.

“우리끼리 백날 떠들어대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요? 일단은 우리 모두가 윤 객주를 만나 봅시다. 만나면 되든 안 되든 무슨 거둥이 생길 것 아니겠소이까?” 

 박한달이 윤왕구 객주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임방주들의 의견을 물었다.

“만나는 것도 중하지만, 그 전에 우리끼리라도 의견을 정한 다음 만나는 것이 순서가 아니까 하오만.”

“그도 그렇겠습니다. 일단 모든 임방주님께서는 쌀을 그해 가는 것에는 다른 의견이 없으신 거지요?”

최풍원이 물었다.

“나는 지난 번 북진본방 회합 때도 그랬지만 반대요. 지금 우리도 살기 힘든 판에 누가 누굴 돕는다는 말이오. 옛날부터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소이다. 청풍관아에서도 안 하는 것을 왜 우리가 해야 한다는 말이오. 게다가 지금 청풍 고을민에게 쌀을 풀어봐야 단 솥에 물 붙기고, 밑 빠진 독에 물 붙기요. 당장 배가 등창에 가붙었는데 쌀을 얻어먹으려고 무슨 소린들 못하겠소. 내 생각에는 주는 즉시 공중으로 날아간 것이나 마찬가지요. 나중에 받기는 뭘 어떻게 받겠소이까? 개뿔도 뭐가 있어야 받던지 말던지 하지!”   

장순갑이었다.

“형님은 어찌 그러시오! 장사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대가리요. 당장 배곯고 있는 사람들을 뭐라도 먹여 살려놔야 물건을 팔던지 사던지 할 것 아니오. 그들이 다 죽어 없어지면 형님 혼자 장사해먹고 살 것이오?”

제 욕심만 차리며 사사건건 트집만 잡고 나서는 장순갑이 최풍원은 몹시 못마땅했다. 지금 서로 힘을 합쳐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터에 장순갑은 자꾸 맥 빠지는 소리로 임방주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죽을 정도로 힘들어할 때 누구는 날 도와준 사람이 있어? 그런데 왜 내가 그들을 위해 쌀을 퍼줘야 해!”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받은 대로만 하며 살 수 있어. 형편이 좋으면 더 주고 그렇지 않으면 못 줄 수도 있지.”

“난 주기도 싫고 받기도 싫다. 내 한 만큼만 먹고 살란다!”

최풍원이 무슨 말을 해도 장순갑은 막무가내였다.

“형도 인제 좀 먹고 살만하니까 그런 야짓잖은 소리를 하지!”

장순갑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석이가 더는 그 꼴을 못 보겠다는 듯 내질렀다.

“내가 무슨 동에 닿지 않는 소리라도 했단 말이냐?” 

“배곯을 때를 생각해봐! 지금 그렇게라도 살만해진 것이 다 누구 덕이여? 그럼 풍원이한테 그런 소리 못할껄!”

장순갑이가 뱁새눈깔을 하며 을렀지만, 장석이도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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