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무릇 성공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정 같은 것이 있다. 약간은 거칠고 그래서 스마트하지는 못하지만 도저히 이대로는 주저앉을 수 없다고 하는 덤프카와도 같은 행동력이 있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인이며 ‘경영의 신(神)’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츠시다 고노스케의 처남으로서 마츠시타 전기의 전무이기도 했던 이우에 도시오는 그 자리를 박차고 독립, 산요 전기를 일으켰다.

가전 업계로서는 꾀나 후발 메이커다. 경쟁 상대도 많다. 상식적으로 볼 때는 도저히 선발타사(先發 他社)에 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우에 도시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타고난 배짱과 행동력, 끈기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강인한 파이트로서 이우에는 가전업계에 일대 선풍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름부터가 거창하다. 태평양도 큰데 그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석권 하겠다 해서 산요(三洋)이다.

어느 날 회사에서 가까운 전철역에 내린 마츠시타 전기의 사원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역에서 마츠시타 본사까지 가는 길가에 서 있는 전주에는 몇 장씩이나 ‘산요’의 광고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벽에도 온통 ‘산요’ 광고 밖에 없다.

도대체 지금 자기는 마츠시타의 본사로 가고 있는 것인가, 산요의 본사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산요가 세탁기를 발매하기 시작했을 때의 에피소드 이지만 이렇게 강인하고 정열적인 선전은 이우에가 아니면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우에는 말한다.

“먼저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일단 줄거리가 결정된 다음에는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용기를 가지고 밀어붙여 버려야 한다.” 성공에의 지름길은 에네르깃시한 행동력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학력이 없다. 초등하고 졸업장조차 없다. 이런 내가 도쿄로 올라와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졸업장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채용해 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하는 일을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거절, 참아왔던 나도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중학교 졸업장이 왜 필요한가!”하고 싸워 버렸다. 열여덟이란 어린 나이에 나는 학력 없음을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른다.”

일본의 극작가 기쿠다 이치오의 회상이지만 그는 어쩔 수 없자 잡초를 뜯어 먹었고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반발한다. 

무서운 투혼으로 가난과 무 학력이라는 핸디캡에 도전한 것이다. 이러한 반발심, 행동력 없이 성공은 없다. 배알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풍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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