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세상을 좀 오래 살아 경험이 축적된 그런 늙은이일 뿐이었다. 노 스님같은 늙은이는 속세에도 얼마든지 많았다. 당장이라도 최풍원은 내가 왜 혼자냐고 노 스님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최풍원에게는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누이동생 보연이가 있었다. 북진본방이 자리가 잡혀 살림을 할 수 있는 안채라도 한 칸 지으면 데려오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저번 날 수산장 주막에서 만났던 날 김주태는 약 먹은 개처럼 길길이 뛰었지만, 최풍원은 무슨 수를 쓰든 늑대소굴 같은 그곳에서 보연이를 데리고 나올 작정이었다.

“이 처사는 내 말을 통 믿지 않는 얼굴이구먼!”

원범 노스님이 빙그레 웃었다.

“제게는 저 아니면 의지가지없는 누이동생이 있습니다.”

“이미 끊어진 인연이여. 후루룩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린 검불이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원범 노 스님이 최풍원이를 바라다보며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스님, 저는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 겁니다. 그리고 그 돈을 힘든 사람들에게 쓰고 싶습니다.”

최풍원이가 노 스님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그래, 큰 부자는 되겠구먼!”

“스님, 큰 부자가 되겠어요?”

우갑 노인이 더 반갑게 달려들며 되물었다.

“큰 재물을 쌓을 상이여! 그런데…….”

최풍원이 거부가 되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노 스님은 개운찮은 여운을 남겼다.

“실은 스님에게 미리 말씀을 드리지는 안했지만, 이 친구는 청풍에 여러 임방을 거느린 본방 대주랍니다. 참으로 용하십니다!”

“이 사람아, 그저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산중 늙은이가 용하기는 뭐가 용해!”

우갑 노인은 노 스님이 용하다고 추켜세웠지만, 최풍원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사실을 말해도 받아들일 줄 모르고 이상한 소리로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한낱 늙은이에 불과한 노 스님의 행태에 조금의 믿음도 생기지 않았다.

“최 대주는 업이 참 많어. 그 업을 갚느라 무진 고생을 겪었고, 앞으로도 그 업을 갚으려면 또 한참을 마음고생을 해야겠구먼. 업을 벗어날 빠른 길이 있지만, 그러면 뭐하누. 제 싫으면 그만인 것을. 이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랑 접고, 세상 이야기나 들려주게나.”

원범 노 스님이 화제를 바꾸자며 말문을 돌렸다.

“맨날 지지고 볶고 그날이 그날이지 별다를 게 있나요? 좋은 얘기보다는 들리는 얘기마다 못 살겠다는 소리만 사방에 난무합니다. 스님은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시니 얼마나 마음속이 시원하고 깨끗하시겠습니까?”

“절간이라고 좋은 일만 있겠는가. 여기도 속세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중도 사람인데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그래도 중생들처럼 아귀다툼은 하지 않지 않습니까?”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별다르겠는가. 여기 장석이 처사처럼 부모님 모시며 장가 들어 자식 낳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도 좋은 삶이 아니겠는가.”

원범 노 스님이 장석이 얼굴을 훑어보더니 관상을 말해주었다.

“지는 안직 장가도 못 갔는디요?”

“곧 가게 되겠네!”

원범 노스님이 손에 쥐어주듯 확실하게 이야기를 했다.

“스님 정말인가유!”

원범 노 스님의 한 마디에 싱글벙글 장석이 입이 귀에 가 붙었다.

“그런데 최 대주는 지금 몸은 절간에 있어도 마음은 딴 곳에 가 있구먼.”

원범 노 스님의 말에도 최풍원은 전혀 반응이 없다.

“최 대주는 지금 그럴 겁니다. 우리 상전 어르신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거든요.”

찻잔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딴 생각에 빠져있는 최풍원을 보며, 노 스님과 우갑 노인이 번갈아가며 말을 주고받았다.

“이보게, 최 대주!”

원범 노 스님이 생각에 빠져있는 최풍원의 정신을 일깨웠다.

“예, 스님!”

“지금 최 대주가 가장 마음에 담고 있는 걱정거리 하나만 말해보게!”

“쌀 쉰 석을 얻어 북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최 대주, 윤 객주하고의 일은 잘 풀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뜻이 좋은데 뭘 걱정하시는가. 별 도움이야 되지 않겠지만 이 늙은 중도 부처님 전에 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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