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석방 됐다. 삼성의 승계작업을 돕느라 국민연금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죄로 아직도 형을 살고 있는 문형표 전 이사장의 유죄판결과 비교하면 앞뒤가 안 맞는 판결이다. 이쯤 되면 사법부의 판결을 마냥 존중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일 서울고법 정형식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 등의 뇌물공여 등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삼성 측의 승마 지원 관련 일부 혐의를 제외한 대부분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특검의 수사가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법원에서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법원과 견해가 다른 부분은 상고해 철저히 다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부끄러운 판결이다. 국민연금공단 의결권 행사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합병보고서까지 조작해 국민연금에 손해를 안기는 합병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문 전 이사장과 달리 거대한 성벽과 같은 재벌 앞에 사법부가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고 할 수 있다. 법과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이다. 이 같은 판결이 반복될 경우 향후 국민이 어떻게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 천금같은 연금이 재벌 삼성이라는 개인기업의 승계를 돕는데 이용됐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이날 판결에 따르면 재판부는 우선 삼성의 승마 지원에 단순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의 광범위한 권한을 고려할 때 삼성의 기업 활동은 대통령의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1심에서 삼성이 현안 해결 대가로 승마 지원,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건넸다고 판단한 89억여원 가운데 36억여원만 뇌물로 봤다. 재판부는 삼성의 승계작업과 포괄적 현안 및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명시적 부정청탁은 없었다고 전제했다.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한 부분만 놓고 봐도 뇌물공여와 범죄수익은닉의 액수가 36억원을 넘고 국회에서의 위증과 횡령 등이 있다. 무죄판결 항목은 차치하고라도 뇌물 36억원은 유죄로 인정한 셈이다. 36억원의 뇌물죄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판결도 이재용이 아니라면 가능할 일인가 묻고 싶다.

재벌 비호를 위해 법치주의를 훼손한 판결이라는 시민사회단체의 규탄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삼성과 박 전 대통령이 결탁해 벌인 국정농단에 완전한 면죄부를 내려준 셈이다. 부디 대법원 판결에서는 공정한 판결이 내려질 수 있을지, 국민이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은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며 국정농단 사건은 각자 사적 이익을 채우기 위해 정치권력과 금력을 이용한 범죄다. 사법부 전횡이 거듭될 수 없도록 사법개혁이 하루빨리 이뤄져, 사법 정의가 바로 서고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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