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 장기 연체자의 빚이 또 탕감된다. 이번에는 원금을 100% 없애 준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31일 기준 10년 이상 장기 연체자로 원금이 1천만원 이하인 46만여명을 대상으로 빚 독촉을 중단하거나 채무를 탕감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산을 제외한 재산이 없고 월 1인당 소득이 중위소득의 60%인 99만원 이하인 채무자들이 대상이다. 채무조정을 받지 않고 채무를 연체하고 있는 이들이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 추심은 즉시 중단되지만, 채무 소각은 일정 기간(최대 3년) 지나야 해준다. 채무조정을 받고 상환 중인 이들이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 채무는 즉시 면제된다. 탕감되는 빚의 총 규모는 3조2천억원어치다.

이번 빚 탕감 정책은 오랜 기간 고통받는 채무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경제적으로 파탄 상태에 놓인 국민을 그대로 두는 것 보다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시켜 생산현장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게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라는 당위성도 있다.

앞선 정부에서도 채무 탕감 정책은 있어 왔다. 김대중 정부는 농가부채 탕감을, 이명박 정부는 5천만원 미만 6개월 이상의 다중채무자의 이자 감면을,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1억원 이하 6개월 이상 채무자의 빚을 최대 50% 감면했다.

문제는 빚을 탕감해줄 때마다 불거지는 형평성 논란이다. 비슷한 여건에서 열심히 돈 벌어 빚을 갚고 있는 선의의 채무자로서는 허탈감도 드는 게 사실이다.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언젠가 정부에서 해결해 준다’는 잘못된 신호를 금융시장에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생 연체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짐이 된다면 이들을 도울 실질적 방법을 찾는 게 옳다. 그리고 정부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우선은 채무면제 심사를 엄격히 하고 채무자의 숨겨진 재산이 없는지, 과연 채무이행 능력이 없는지 면밀히 추적해야 한다. 부정 탕감자 신고 센터 운영도 활성화해야 한다. 그래야 탕감에 따른 도덕적 헤이 우려를 잠재울 수 있다.

채무 조정으로 부채는 얼마든지 털어낼 수 있지만 쉽게 빚을 내는 습관은 좀처럼 고치지 못한다. 금융 취약계층의 실질적 재기를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채무 탕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연체자들이 생산현장 복귀를 통해 사회경제에 기여토록 하는 것이다. 재취업이나 재활 프로그램 등 소득 창출과 연계하는 종합 지원 대책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빚 탕감을 받은 채무자가 다시 연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회생방안이 근본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채 탕감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치러지는 악순환의 ‘빚잔치’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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