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북진본방이 어려움에 처해있으면서 또 빚까지 져가며 쌀을 빌려다 청풍 고을민들에게 풀어먹인다고 하면 모두들 최풍원을 미쳤다고 할 것이었다. 더구나 당장 아무것도 팔아먹을 것이 없어 쫄쫄 굶고 있는 고을민들에게 쌀값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언제 받을는지 기약도 없는 것이었다. 받아야 받는 것이었다. 한 푼이 새롭고 각 마을의 임방주들도 힘겨운 지경에, 그래도 자신들 이득을 챙기지 않고 본방을 위해 희생을 해주겠다고 결의를 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내일 윤 객주가 돌아와야 모든 것이 결론지어 지겠지만, 최풍원은 어떻게든 굶주리고 있는 청풍 고을민들을 위해 무슨 수를 쓰든 쌀을 구해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그 쌀이 북진본방이 살아날 수 있는 촉매재로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런 상전에서 일하면 안 입어도 뜨뜻하고,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

충주 윤객주 상전에서 자고 일어난 이튿날 아침 최풍원은 장석이와 박왕발이를 데리고 충주읍성 구경을 나섰다. 장석이가 읍성 상전거리에 늘어선 장사하는 집들을 보며 말했다. 상전에는 헤아릴 수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물건들이 즐비했다.

“형이 저런 상전을 차리면 되지, 왜 저런 데서 일할 생각만 해?”

“내가 어떻게 저런 상전을 차려!”

최풍원의 말에 장석이는 어림도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하면 하지 형이라고 왜 못해!”

최풍원이 답답한 마음에 버럭 화를 냈다.

“난,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게 좋아.”

 장석이는 매번 그랬다. 자신이 스스로 뭐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남 밑에서 일할 생각부터 먼저 했다.

“장석이 아재는 종살이가 그렇게 좋아?”

박왕발이가 장석이를 보며 놀려댔다.

“뭐여, 이눔아! 누가 종살이가 좋다고 그랬어?”

“남 밑에서 일하는 게 좋으면 그게 종살이지 뭐유. 난 배곯아도 내 멋대로 사는 게 좋은데.”

“니놈이 안직 어린놈이라 뭘 몰라 그려. 니가 배고픈 게 어떤 건지나 알고 지껄이는 거냐? 세상에 배고픈 설움보다 큰 것은 없다.”

“차라리 굶고 말지, 남 종살이가 뭐가 좋댜?”

박왕발이는 좀처럼 장석이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박왕발이는 처음부터 장석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왕발아, 장석이 형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너는 아버지가 장사를 하는 덕에 배곯을 일이 별로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먹을 게 없어 굶는 고통만큼 힘겨운 것은 없다.”

“대주님, 저도 배고픈 것 알아요. 하지만 제 말은 종살이를 하느니 배고픈 게 낫다는 말입니다.”

박왕발이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했다. 그렇지만 최풍원은 그런 박왕발이가 조금도 거슬리지 않았다. 아직은 더 겪어봐야겠지만, 박왕발이 같은 녀석은 모 아니면 도였다. 상대가 누구든 제 생각을 분명히 하는 저런 녀석이 같이 일을 하는 데는 편하고 오래 같이 먼 길을 갈 수 있었다. 속으로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대방 눈치를 보며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저냥 넘어가는 그런 사람들을 세상에서는 사려 깊다고 했다. 그러나 언제든 어느 쪽으로든 바뀔 수 있는 그런 회색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장본인들로 외려 적보다 더 위험했다.

“왕발아, 만약에 네가 지금 여기서 출발해 청풍까지 서둘러 간다면 얼마나 걸리겠느냐?”

“왜, 왕발이를 청풍으로 보내려구?”

느닷없는 최풍원의 뜬금없는 소리에 장석이가 물었다.

“지금 보낸다는 게 아니라, 물어보는 거요.”

“아침나절이니 점심 새참 전이면 너끈하게 당도하겠지요!”

“그럼 우리 임방 모두에게 연락을 한다 해도 해지기 전까지는 넉넉하겠구나?”

“충주서 청풍까지는 길이 설어 좀 더디겠지만, 청풍 인근은 훤한 길이니 더 빨리 다닐 수 있지요.”

박왕발이는 아직은 나이가 어린 까닭인지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풍원아, 쉰 석이나 되는 쌀을 북진까지 어떻게 전부 져 나르냐?”

장석이는 벌써부터 쌀 나르는 것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형, 나는 그것보다 윤 객주 어른이 우리 청을 들어줄까 그게 더 걱정이요.”

하기야 옮기는 것은 쌀을 얻은 뒤의 일이지, 만의 하나 윤 객주가 거절을 한다면 옮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북진본방으로서는 낭패 중 낭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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