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갑 노인이 본방과 임방에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얼마든 가져가라고 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최풍원이 뜸을 들였다.

“왜 그러느냐?”

우갑 노인이 우물쭈물거리는 최풍원을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차차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

단도직입으로 말을 하려다 최풍원이 마음을 고쳐먹었다. 생각 같아서는 쌀 쉰 석을 달라고 곧바로 말을 해보고 싶었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었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한 후에 우갑 노인에게 사정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청풍 사정도 힘들지?”

“그만그만합니다.”

“일 년 중 가장 힘들 때가 지금이다. 이 고비만 넘어가면 조금씩 나아질 거다. 충주도 이런데 거기야 오죽하겄느냐.”

우갑 노인의 표정에서 안스러움이 묻어났다.

장사라는 것이 그랬다. 큰 장사가 재채기를 하면 중간치기는 기침을 했고 아랫치기는 목이 터졌다. 충주 같은 큰 고을 사정이 좋지 않으면 청풍 같은 곳은 몸을 사리고 더 작은 고을에서는 웅크려야 견뎌낼 수 있었다. 충주가 어려운데 청풍이 좋을 리 만무했다. 평생 장사를 해온 우갑 노인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어르신 북진본방이 자리를 잡으려니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닙니다.”

최풍원이 북진본방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비췄다.

“많이 어렵더냐?”

“…….”

최풍원이 말문을 닫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엇이 제일 부닥치고 있는 문제더냐?”

“거래 물량입니다. 청풍 인근에서 나는 물산들은 거개가 청풍도가가 독점하고, 언저리에 조금 나오는 짜투리 물산들이 임방을 통해 들어오는 본방으로 들어오는 형편이니 매우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뒤에 장사를 시작했으니 당연히 겪어야 할 문제 아니더냐. 문제는 그걸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래, 방법은 있느냐?”

“청풍도가와 맞서지 않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이전부터 뿌리박으면 내려온 청풍의 상인들을 이제 시작한 네가 무슨 수로 맞설 수 있겠느냐?”

“방법이야 왜 없겠습니까?”

“무슨 방법이냐?”

“어르신, 청풍도가에서 사람들을 떼어내는 것입니다.”

“장사도 사람 마음 얻는 것이 제일로 중요한데, 이제껏 거기에 붙어있던 사람들을 무슨 수로 떼어낸단 말이냐?”

“지금 청풍과 인근 모든 마을에는 쌀이 동이 났습니다. 청풍도가에서 장난질을 치고 있습니다.”

“쌀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청풍장은 물론 인근 향시마다 도가 사람들을 풀어 한 줌이라도 나온 쌀이 보이면 박박 긁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쌀값을 폭등시켜 폭리를 취하려고 그러는가보구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우갑 노인은 청풍도가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청풍 사람들 원성이 자자합니다!”

“그걸 이용하자는 말이구나.”

우갑 노인은 청풍도가의 속셈 뿐 아니라 최풍원의 의도까지 넘겨 집고 있었다.

최풍원은 현재 청풍의 사정과 고을민들의 형편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울 때 양식을 공급해주면 사람들도 고마운 마음에 북진본방이나 임방을 많이 이용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의도도 전달했다.

“사람들 생각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한결같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렇다면 세상일이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겠지.”

우갑 노인은 최풍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 쌀은 얼마나 있어야겠느냐?”

한참을 생각하더니 우갑 노인이 물었다.

“쉰 석이 필요합니다.”

“쉰 석이나. 만만치 않은 양이로구나.”

우갑 노인이 태연한 척 표정은 짓고 있었지만, 적이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 정도는 있어야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 춘궁기는 넘길 듯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최풍원이 밀어부쳤다.

“만만찮은 양이니 내 맘대로 할 수 없고, 내일 객주 어른 돌아오시면 말씀 올려보자.”

우갑 노인이 확답을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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