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위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에 마을의 안녕을 위해 말채나무 아래서 제를 올리고 있는데, 이 말채나무의 잎이 무성하면 일 년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굳게 믿어 해마다 지극정성을 다해 치성을 올린다고 했다.

꽃바위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이 지난 다음이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걸은 덕분에 그래도 이만큼이나 온 것이었다. 세 사람 모두 허기가 잔뜩 졌지만, 소와 당나귀에만 여물을 먹이고 꽃바위 나루에서 배를 탔다. 꽃바위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마즈막재를 넘으면 충주였다. 윤 객주 상전은 충주읍성 안에 있었다. 충주읍성은 염바다들을 지나 용산천을 건너야 했으므로 상전에 당도하려면 아직도 반나절 턱은 남아있었다. 동지가 지난 지도 한참이고, 봄이 멀지 않았으므로 해가 많이 길어졌다고는 해도 어둡기 전에 닿으려면 서둘러 걸어야 했다.

“저기 목계가 보리밥을 먹으면, 우리는 쌀밥을 먹어유. 이게 뭔 말인지 아시우?”

사공은 자기가 사는 꽃바위를 은근히 치켜세우며 목계사람들은 무시하는 말투였다. 

꽃바위 나루터 건너편에는 목벌이 있었다. 꽃바위 쪽에서 보면 목벌은 강 상류 심항산 아래에 있었다. 남서쪽으로는 남산이 있고, 북서쪽으로는 남한강과 직접 접하고 있었다. 목벌의 마을들은 대부분 산간지대에 있는 까닭에 나무가 풍부했다. 그래서 나무벌, 목벌이라 불렸는데, 그 까닭으로 이곳 사람들은 나무장사와 숯을 구워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꽃바위는 물길을 통해 사람들 왕래도 많았으므로 목이 좋아 파시가 종종 열리고 주막들도 호황을 누렸다.

“저 바우는 뭔 바우인 줄 아슈?”

사공은 천성이 수다스러운 사람인지, 아니면 모처럼 낯선 사람을 만나 그러는지 꽤나 아는 척을 하며 수다스러웠다.

“뭔 바우까?”

박왕발이가 사공에게 물었다.

“그 말투가 무어냐?”

사공을 대하는 박왕발의 말투가 존칭도 하다도 아니자 최풍원이 물었다.

“대주, 뭘 그걸 갖고 그러십니까?”

박왕발이가 금새 말투를 바꿨다. 어린 박왕발이도 사공을 무시하고 있었다. 사공이나 뱃사람은 천민 취급을 했기 때문이었다.

“저기를 보슈!”

사공이 가리키는 강어귀에는 두 개의 바위가 선돌처럼 서있었다.

“이쪽 놈은 석달바우고, 그 옆에 있는 놈은 고사바우다.”

사공이 의기양양해하며, 무엇을 보채듯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수까?”

박왕발이가 입이 근질근질해 참을 수 없어 안달이 난 사공의 속내를 알아 체리고 두 바위의 연유에 대해 물었다.

사공의 이야기는 이러이러했다. 알 수는 없지만 가뭄이든 어느 해였다. 한양으로 가던 뗏목이 하나 바위에 걸려 그만 좌초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날은 점점 가물어 강물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뗏목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 석 달이 다되도록 내리지 않고 갈 길이 바쁜 뗏목꾼들은 강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나무 주인들을 생각하며 하루가 여삼추였다. 기다리다 지친 뗏목꾼들은 좌초된 바위에다 제물을 진설해놓고 기우제를 올렸다. 이들의 정성을 하늘이 알았는지 며칠 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바닥이 드러났던 강물도 점차 불어나 뗏목을 띄워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수 있었다 한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여기 사람들은 떼가 좌초됐던 바우를 석달바우, 치성을 올렸던 바위를 고사바우라 했다는 겨!”

단 한 번이라도 누구를 가르쳐본 적이 없이 굽실거리며 살아온 사공이 마을 전설로 누구를 가르쳤다는 사실에 한껏 뿌듯해보였다. 노를 젓는 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렇게 고마운데 이놈저놈하면 되겠수까?”

박왕발이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뭐라구?”

사공이 영문을 몰라 뜨악한 표정으로 박왕발을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수까? 떼를 구해준 고마운 바위에게 이놈저놈 하니까 하는 말이오. 돌이라도 사람을 도와주었으면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수까?”

“돌덩어리한테 뭘 고마워 해, 이놈아!”

장석이가 말도 안 된다며 박왕발이에게 욕을 했다.

“돌덩어리만도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에 비하면 저 고사바위가 더 낫네요!.”

“그건 왕발이 말이 맞다!”

최풍원이 박왕발이 편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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