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목은 박왕발이 말처럼 뗏목이 자는 곳이 맞았다. 강원도에서부터 내려온 뗏목이 한양의 광나루까지는 물 사정이 좋으면 사나흘 정도 걸렸고, 그렇지 않으면 이레가 넘게 걸리기도 했다. 며칠씩 걸리는 길이니 당연히 뗏목꾼들도 도중에 유숙을 하고 가야만 했다. 그러나 뗏목은 소금배나 다름 배들과 달라 아무데나 대놓고 잘 수 없었다. 배에 비하면 엄청나게 덩치가 큰 뗏목은 물살이 빠른 여울이나 강폭이 좁은 곳에는 정박할 수 없었다. 한강 상류에 속하는 이 지역은 강바닥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지역이라 영월에서 영춘으로 해서 단양을 거쳐 충주까지 가는 물길에는 뗏목을 세워둘만한 곳이 그리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진목마을 앞 당앞소에 이르면 물살이 완만하고 수심이 깊은데다 강이 넓어 뗏목이 여장을 풀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당연히 뗏꾼들과 뱃꾼들이 모여들었다. 타관 사람들이 드나드니 주막집이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주막거리도 생겨났다. 사람들이 흥청거니니 덩달아 강변에는 파시도 생겨났다. 파시가 생겨 사람들이 들썩거리니 마을 전체가 잔치마당 같았다. 진목이 인근 다른 마을들의 중심이 된 것은 이런 것 때문이었다.

“산물은 뭐가 좋지?”

“별다른 것은 없고 여기도 밭작물이지. 특히 강에서 나오는 황쏘가리가 특히 유명혀.”

“황쏘가리?”

“우리 할아버지가 언젠가 그랬는데, 황쏘가리가 소한테 그랬대요. 너하고 내 살 한 점하고 안 바꾼다고.”

“어린 놈이 별 얘기를 다 듣고 다니는구먼. 그게 뭔 소리인지나 알고 지껄이는 게냐?”

애늙은이 같은 박왕발이의 말에 장석이가 같잖아서 핀잔을 주었다.

“그깟 것도 모를까봐 그러시우?”

박왕발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그게 뭔 소리더냐?”

이번에는 최풍원이 물었다.

“참새가 소한테 한 얘기나 같은 것 아닙니까?”

박왕발이가 도리어 반문을 했다. 최풍원이가 그 뜻을 몰라 물은 것이 아니었다. 장석이처럼 최풍원도 박왕발이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들처럼 말을 하니 그 뜻을 제대로나 알고 지껄이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최풍원이 깜짝 놀랐다. 볼수록 박왕발이는 뭔가 남다른 점이 있는 녀석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황쏘가리가 그만큼 맛있다’라던가, ‘황쏘가리가 비싸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대다수 경우였다. 그런데 박왕발이는 참새를 들고 나와 역으로 질문을 했다. 나이 따지기 좋아하는 어른들이 들으면 당돌하다고 역정을 낼 일이었지만,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박한달 임방주는 ‘아들 녀석이 동네 저지레는 몽땅 하고 다닌다’고 했지만, 동네에서 밉상으로 보인 이유도 일견 이해가 갔다. 최풍원은 이 녀석을 잘 키우면 물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왕발이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무시하며 고깝게 받아들인 장석이에게 설명하는 대신 똑같이 무시하며 넘겨버렸고, 또다시 궁금해 물어온 최풍원에게는 참새를 들어 대신 답을 했다. 참새 이야기는 황쏘가리 경우와는 좀 달랐지만, 참새 또한 몸집이 작아 한 점 밖에 먹을 게 없지만 워낙에 고기 맛이 좋은 까닭에 그런 말이 생겨난 것이었다. 

박왕발이의 말처럼 청풍 언저리에서는 황쏘가리를 불러 소를 무참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사방에 있었다. 이 지역에는 가는 곳마다 물이 풍부하니 물고기 종류도 많았다. 그 중에서 쏘가리는 물고기 중 귀족 물고기였다. 그런 쏘가리 중에서도 노란 금빛을 띄는 황쏘가리는 단연 왕족이었다. 맛도 맛이었지만, 워낙에 귀한 놈이라 황소와도 바꾸지 않을 정도로 비싼 금값이었다. 그러니 박왕발이 말따나 황쏘가리 살 한 점하고 황소 한 마리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예전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박왕발이는 다리가 빠르기도 했지만 말재주가 여간이 아니었다. 그것 또한 장사꾼에게는 큰 재주였다.

“떠내러 가는 게 잘 보이지 않으니 올해는 뗏목도 많이 준 것 같어.”

장석이가 진목마을 앞 당앞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난겨울 가물었으니 그럴거여.”

“봄 가뭄이 심하니 어쩔 수 없지요.”

최풍원의 말에 박왕발이 끼어들었다.

“에이, 니 놈 앞에선 찬물도 못 먹겠다!”

장석이가 혀를 내둘렀다.

“왕발이는 모르는 게 없구나.”

최풍원은 오히려 기특해했다.

이때쯤이면 강물을 따라 떠가는 뗏목들을 수월찮게 구경할 수 있었다. 수십 바닥씩 엮여 줄나래비를 하며 내려가는 뗏목들은 바라다보고만 있어도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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