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 충북작가회 사무국장

며칠 전에 지인이 선물로 준 피베리 커피는 완두콩처럼 동글동글했다. 분쇄기의 칼날을 평평한 생두가 갈리도록 조정해 두었는데 둥근 커피콩이 갈아질 리가 만무였다. 칼날을 몇 번 조정하고 커피콩을 방바닥에 흐트러트리면서 어렵사리 갈아 드리퍼에 내리니 그윽하고 구수한 커피 향이 집 안 구석구석까지 헤집고 다닌다.

커피 열매 안에는 커피 생두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들어 있는데 가끔 기형처럼 둥근 생두 하나가 들어있는 것이 있다. 이 생두가 완두콩처럼 생겼다고 해서 ‘피베리’라 불린다.

처음 커피가 알려지던 때에는 ‘피베리’가 커피의 잡맛을 내는 ‘결점두’라고 생각해 다 골라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피베리’가 커피광들 사이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커피 애호가들은 피베리커피가 보통의 생두보다 뛰어난 향과 깊은 맛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기형두’라고 버려지던 피베리가 맛과 향을 인정받아 고급 커피로 불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 주변에도 진가를 알지 못해 묻혀 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 다닐 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1급 장애 판정을 받은 조카가 사회적 기업의 CEO가 됐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조카는 피눈물 나는 성장통을 겪었다. 아직은 장애인에 대해 괴리감을 느끼는 사회인식을 깨고 그 속으로 들어가려는 조카에게 무엇보다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에 사회서비스 제공과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라 조카도 지적장애인 일곱 명을 의무적으로 채용했다. 얼핏 보기에 그들은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언어가 조금 어눌했다.

그들은 맡은 업무를 척척 해내며 보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마흔이 다 돼가는 자식이 결혼도 못 하고 집에 뒹구는 것을 보며 애태우던 부모님도 아들이 근무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을 대견한 듯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내 자식이 할 수 있는 일도 있구나!”라고 하며 행복해했다.

휠체어에 앉아 개회사를 하던 조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성치 않은 몸으로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던가. 순간, 사고 후 10여 년을 방안에만 갇혀 지내던 조카를 보며 노심초사했던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그때 조카가 자포자기했더라면 지금쯤 조카는 어디에 서 있을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존재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지능과 역할에 맞는 일을 찾지 못해 그들이 사회 속으로 들어올 기회가 없을 뿐이다. 한때, ‘결점두’라고 불량품 취급받았던 피베리커피가 고급 커피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들도 그들만의 아름다운 인생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개업식 날 세상을 다 얻은 듯 상기된 얼굴로 테이프를 끊던 조카의 얼굴이 커피잔에 잔잔하게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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