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소이다. 잘 좀 부탁하외다!”

오늘 회합은 이것으로 끝을 내겠소!”

최풍원이 북진본방에 모인 모든 임방주들에게 회합의 끝을 알렸다.

이튿날부터 최풍원은 장석이와 함께 북진본방에 입고된 물산들을 정리했다. 역시 물산들은 대부분 임산물들이었다. 청풍 인근에서 생산되는 물산들이 산에서 나는 것들이 주종을 이루는 까닭이기도 했지만, 곡물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춘궁기였기도 했지만 청풍도가에서 곡물을 씨를 말리고 있어 더더욱 그러했다.

“풍원아, 예전처럼 너를 따라 장사를 다니면 안 되겄냐?”

물산 갈무리를 하던 장석이가 풍원이에게 말했다.

“본방에 입고되는 물산들 관리가 어려워서 그래?”

“난, 짐 지고 다니는 것이 뱃속 편해. 어느 임방에서 누가 물건을 얼마나 가지고 왔고, 또 본방 물건은 얼마나 가지고 갔는지 이런 것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 다른 사람을 시키고 나는 너하고 장사나 다녔으면 좋겠다.”

최풍원도 장석이가 본방 물산들을 관리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장석이에게 맡겼던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장사가 장사를 잘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재산을 잘 관리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했다. 재산 관리라는 것도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약빠른 사람보다는 믿을만한 사람이 곳간을 지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좀 느리기는 해도 풍원이는 장석이가 믿을 사람은 장석이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장석이가 북진본방의 곳간 관리를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한 푼이 아쉬운 판에 사람만 무턱대고 늘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럴만한 돈이 있으면 물건에 한 푼이라도 더 투자를 해야 할 때였다.

“형, 일단은 이번 물건부터 갈무리해서 충주로 넘기고 생각해보자. 그때까지만 힘들더라도 형이 좀 더 해!”

최풍원이 장석이를 달랬다. 

“알았구먼, 풍원아.”

장석이 대답이 시원찮았다. 북진본방 물산 일도 곧 새로운 사람을 구해야 할 듯싶었다. 북진본방을 만들기 직전 일에 치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던 때와 또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장사와 행상을 같이 하다 보니 일에 치여 감당하기 힘들어 장사는 임방에 맡기고 자신은 도거리만 하겠다고 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임방이 조직되고 최풍원은 북진본방의 대주로 뽑혀 임방주들의 뒤치닥꺼리까지 떠안게 되었다. 이래저래 최풍원은 머리가 복잡했다. 

“풍원아, 난 너와 지게 지고 소금 팔러 다닐 대가 참 좋았다.”

“왜 지금은 안 좋아?”

“지금은 우리 장사가 아닌 것 같어.”

장석이는 장사가 벌려나갈수록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형, 나도 그래. 그렇지만 시작한 일이니 어쩌겠어.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힘껏 하다보면 지금보다야 나아지겠지. 그러니 처음 우리가 장사할 때 약속한 것처럼 형하고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갈거야. 예전에 머슴살이할 때 생각을 해봐. 그래도 그대보다는 지금이 낫지 않어?”

“그야 그렇지. 그래도 자꾸만…….”

최풍원이 장석이를 안심시켰지만, 그래도 장석이는 불안한 마음이 가셔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형, 다 좋아질 거야! 그런데 오늘 우리가 바쁜 걸 알 텐데 순갑이 형님은 어째 코빽이도 안 보인디야?”

최풍원이 말꼬리를 돌렸다.

“순갑이 형이 이전과는 달리 좀 변한 것 같혀. 우리가 본방을 만들고 난 후부터 왕래가 뜸해졌어.”

“임방 일이 바빠 그러겠지.”

“아녀, 그게 아닌 것 같어.”

장석이는 자꾸만 순갑이가 이상해졌다고 했지만 최풍원은 귓등으로 흘렸다.

북진본방 마당 안팎에는 두 사람이 갈무리하는 물산들로 온통 어지러웠다. 최풍원은 물산들을 정리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내려가서의 훗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윤왕구 객주나 우갑 노인에게는 염치없는 일이었지만 빈 손으로 죽는 소리를 해서라도 이 고비를 넘겨야 했다. 최풍원이 비빌 언덕은 윤 객주 상전 밖에 없었다. 북진본방의 목숨 줄도 윤 객주 손에 달려있었다. 본방이 있는 언덕 아래로 항아리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널찍한 북진나루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끔씩 강 상류로 올라가는 배와 하류로 내려가는 짐배들이 보일 뿐 북진나루에는 거룻배만 한 척 썰렁하게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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