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도 요즘은 중2한테 밀린다는 유머가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우리나라의 중학교 2학년생들이 무서워 전쟁을 못 일으킨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로 중2들은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는 중2도 밀리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갱년기이다.

웬만한 여자들이면 겪지 않고는 지나기 힘든 갱년기는 증상도 다양하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불면증, 관절통, 근육통, 우울 감, 복부비만, 무기력증에 종잡을수 없는 감정의 변화등 이밖에도 갖가지 증상들이 중년의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요즘 내가 그 갱년기의 한 중간에 서있다.

2년 전부터 가슴 두근거림과 관절통에 시달리고 있다. 새벽에 눈을 뜨면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선 듯 가슴이 두근거려 고통스럽기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또 오른쪽 팔에서 시작한 통증은 어깨를 돌아 왼쪽 어깨까지 점령해버려 청소를 한다든가 빨래를 한다든가 하는 집안 일 조차도 힘들어졌다. 눈뜨면 정형외과 통증의학과를 전전하며 물리치료 도수치료 등을 받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삶의 질이 완전히 떨어진 느낌과 함께 우울감이 찾아왔다. 작은 일에도 서운하고 화가 나고 눈물이 흔해졌다.

평상시 난 누구보다도 열심히 운동하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왔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갱년기를 겪어도 난 피해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예외는 없었다.

평소 비타민제도 먹어 본적이 없었는데 식탁위에는 갖가지 약병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날이 갈수록 먹는 약들이 한 알씩 추가 되었다.

사우나나 모임 등에서 내 또래 아줌마들의 화두는 대부분 몸에 좋은 음식이나 약이야기 아니면 용하다는 병원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그런 것들에 이제는 귀가 쫑긋해지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처음 증상이 나타 날 때는 큰 병인가 싶어 식구들도 긴장을 하고 남편도 신경을 쓰는 듯싶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니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오로지 나 혼자 견뎌야하는 몫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견딜 만 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증상이 완화 되었다기보다는 내가 통증에 적응이 돼가고 있었다.

차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통증에 익숙해지면서 낫고 있다고 느낄 뿐이었다. 더 이상 심해지지 않기를 바랄뿐 이제 부터는 함께 가지고 가야 할 동반자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아이들의 빈자리로 쓸쓸해진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에 늘어나는 약병들과 물리치료기구들이 팔팔하던 기운과 맞바꿔 자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비타민D 수치가 부족하다는 진단을 받아 탄 천 산책을 나갔다.

몇 걸음 앞서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꼭 잡고 느린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나에게는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저 모습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지니고 있을까?

나이 듦에 어떻게 적응해 가며 여기까지 왔을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려놓으며 세월에 순응했을까?

나는 저 분들이 살아온 세월에 겨우 삼분의 이정도 밖에 살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버겁고 힘겨운데 과연 저 모습이 될 때 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서로에게 의지하며 꽉 잡은 두 손을 지팡이 삼아 산책을 하는 노부부의 지나온 세월이 까마득히 느껴졌다.

어깨 통증이 익숙해질 즈음에 발바닥과 무릎의 통증이 시작 되었다. 엑스레이 결과 무릎 연골은 내 나이에 비해 좋단다. 즉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불안할 것도 답답할 것도 없다. 내 병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병이라기보다는 누구나 거쳐 가는 통과 의례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훨씬 홀가분해졌다. 늙는다고 슬퍼 할 것도 내 몸이 변해간다고 서러워 할 것도 아니다.

오는 세월에 당당히 맞서 위축되지 않고 헤쳐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갱년기야 ,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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