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해가 바뀌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꿈을 꾼다. 해돋이의 명소를 찾아 떠오르는 해에 소망을 담아 좋은 일만 있기를 빌기도 한다. 그리고 지인과 덕담을 건넨다. 요즘엔 예전에 많이 나돌던 카드나 연하장에 나올법한 예쁜 그림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다정한 친지나 벗들 사이엔 전화를 주고받기도 하고. 필자도 해가 바뀌면서 새해 인사를 스마트폰을 통해 주고 받았다. 친지들 사이에 전화도 주고받았다. 대개는 건강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서로를 축복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중에 또 다른 안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래전에 담임을 했던 한 제자의 전화였다. 제자가 안부를 전하면 스승은 행복하다. 그것도 이미 학교를 졸업한 옛 제자가 소식을 전해 줄 때 더욱 기쁘다. 35년 전이던가? 필자가 한 시골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였다. 그 때만해도 젊은 교사였던 필자는 열정을 다해 학생지도에 여념이 없었다. 그 제자는 열심히 공부하는 착실하고 똑똑한 학생이었다. 모범생이었던 그 학생이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그리고 3학년으로 진급해 졸업할 무렵이 되었다. 당연히 그렇듯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럴 때 그 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가정 형편상 정규 고등학교 진학이 어렵다는 거였다. 고민을 겸한 상담 끝에 필자는 제자에게 산업체부설고등학교를 권했다. 제자는 쾌히 그 학교를 선택해 취직 겸 진학을 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치는 제자를 보면 교사는 안타깝다. 필자 또한 그랬다. 가끔씩 안부도 묻고 걱정도 함께 했다. 그렇게 제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백화점에 코너를 얻어 옷가게를 하며 자립을 했다. 그리고 시집을 가서는 엄마가 되고 세월이 흘렀다. 필자와는 다행히 연락이 끊어지지 않고 가끔씩 전화를 해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던 제자가 30대 후반 쯤 됐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제자는 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정말 공부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 말은 듣는 순간 필자는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그랬구나! 그렇게 하고 싶은 공부를 어떻게 참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전문대학을 권했고 제자는 진학을 했다. 30대 후반의 새내기 대학생! 제자의 대학생활은 그렇게 느지감치 시작됐다. 2년의 학창시절이 흐르고 제자는 다시 4년제 대학을 편입했다. 그리고 졸업! 다시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제자로부터 며칠 전 전화를 받았다. 새해 인사 겸 살아온 얘기를 하면서 그동안 남편이 많이 아파서 병간호를 했다는 것이다. 걱정 끝에 제자는 참으로 기쁜 소식을 들려주었다.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전화한 바로 그날 마지막으로 제출했다는 거였다. 이제 제자의 나이는 4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필자는 대견하다! 장하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뻤다. 어린 시절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끝까지 학문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간직했다가 마침내 이루고야만 그 끈기와 인내심에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청출어람이란 했던가! 필자는 그 말이 갖는 스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준 그 제자에게 고마움도 느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던 분들이 학문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갔으면 참 좋겠다는 소망이 일었다. 새해에는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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