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경 희  < 논설위원 >

2005년 2월로 예정된 77회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추천을 둘러싸고 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제작사들이 벌이는 행태가 가히 목불인견이다.

제 밥그릇 싸움에 벌집을 건드린 듯 소란스러운 영화계의 잡음은 소란을 넘어 치졸한 무협영화 한편을 보는 것처럼 소란스러워 한국영화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많은 팬들에게까지 실망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의 선정 절차는 각 나라별로 아카데미 위원회로부터 후보작 추천권을 위임받은 곳에서 한 작품씩을 선정, 경쟁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후보작 추천권을 위임받은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달 김기덕 감독의 ‘빈집’을 추천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실존하지만 볼 수 없는 존재를 다룬 김기덕 감독의 판타지로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진위 영화제 추천기준도 몰라

그러나 극장 개봉 후 7일 이상 상영한 작품이라는 아카데미 위원회 규정에 위배된다는 이의에 부딪치자 영화진흥위원회는 국내 개봉 예정작인 빈집의 추천작 선정을 취소하고 최고의 흥행작인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로 후보작을 변경했다.

추천작 선정을 취소 당한 빈집의 제작진은 당초 10월 중순 개봉 예정이었던 상영일을 9월23일로 앞당기고 단관 개봉의 특별 상영이지만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측에 재심사를 요청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측은 특별 상영도 정식 상영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을 해야할 지에 대해 고심한 끝에 아카데미 위원회에 질의서를 보냈는데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가 아카데미의 후보작 추천 기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 꼴이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뒤늦게 추천 신청을 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올드보이의 제작사인 쇼이스트는 올드보이가 추천 신청조차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마감 시한을 보름이나 넘겨 뒤늦게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쇼이스트 측은 올드보이가 해외 수상작인 만큼 영화진흥위원회가 특별 배려를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꼬이고 있으니 점점 난처하게 된 것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입장이다. 빈집의 특별 상영과 올드보이의 특별 배려가 전례로 남게될 경우 앞으로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영화상 진출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미국 내 흥행을 보장받는다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은 국가마다 한편씩 출품한 후보작을 아카데미 측이 심사해 그 중 5편을 최종후보로 선정한다.

역대의 아카데미 출품 한국영화는 95년 신상옥 감독의 마유미, 2000년 정지영 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2001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2003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등이 있지만 후보작으로 지명된 작품은 없었다.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권 영화들이 그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각광을 받아온 데 반해 한국 영화는 세계 최대의 영화축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매번 찬밥 신세였던 것이다.

출품 전 내분 양상 안될 말

1947년부터 시상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아카데미 영화제가 미국 중심의 잔치라는 비난에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시작했으나 결과는 역시 아카데미의 기본 성격이나 트렌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다.

미국 중심의   보수성을 반영하듯 지나친 인권 문제를 다루거나 반미적인 영화들은 수상은   고사하고 후보에도 오를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 수상작들인 와호장룡,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인생은 아름다워 등을 살펴보면 가족이나 여성, 아동, 역사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칸이나 베니스, 베를린영화제의 수상 결과와는 차이를 보이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결국 미국의 자국 내 영화시장과 흥행수익을 위한 잔치일 뿐이다.

아무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이 한국영화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으나 수상도 하기 전에 우리끼리 피를 흘려서야 되겠는가. 영화진흥위원회의 냉철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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