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결국 인재(人災)로 빚어진 참사였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수많은 불법과 안전 불감증이 모아져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되면서 우리 사회의 구제불능형 대형사고 악순환에 난감함만 더해진다.

이번 참사는 부실한 소방 안전 점검이 인명피해를 키웠다. 현행 소방시설관리법상 안전 점검은 매년 한 차례만 실시하면 된다. 건물주가 자격증을 소지한 직원을 통해 직접 점검해도 되고 민간업체를 선정해 대행해도 된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건물주 아들이 직접 소방 점검을 해왔다. 법적으로 자격증만 있으면 가족은 물론 건물주가 직접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셀프 점검’인데 제대로 이뤄졌을까 하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현장 조사 등에서 20명의 희생자를 낸 2층 여성 사우나의 비상구 통로는 철제 선반으로 막혀 있어 탈출이 불가능했고, 일부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민간업체에 맡긴다고 해서 완전히 해결될 일도 아니다. 비용 등을 이유로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건물주와 협의한 뒤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방 점검 제도를 당장 손봐야 한다.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은 무허가 증축과 용도 변경 등 불법행위도 버젓이 이뤄졌다. 8층 음식점 앞 테라스와 9층 테라스가 불법 증축됐다. 9층 기계실을 직원숙소용 주거 공간으로 불법 개조해 사용해 온 사실도 확인됐다.

무엇보다 소방차 진입로 확보 실패는 대형 화재가 일어날 때마다 지적되는 고질적인 병폐다. 지난 21일 제천 화재 당시 소방차는 화재 발생 신고 7분만에 도착했지만 주변 불법주차 차량으로 인해 현장 진입이 늦어졌다. 굴절사다리차는 사다리를 펼 수 있는 공간을 막은 차량들을 치우기 위해 견인차를 부르는 등 길을 트기까지 30분 이상 걸렸다고 한다.

소방차의 화재 현장 진입을 막는 불법주차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건물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면서도 소방관들은 불법차량을 어찌하지 못해 차량 주인이 나타나 길을 틔워 줄 때까지 시간을 허비한다. 자칫 함부로 옮기려다 차량을 파손이라도 되면 개인적으로 보상하거나 소송 등에 휘말려 피곤해지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화재 진압은 시간과 싸우는 일이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소방차량 등 위급상황 시 구조에 방해되는 불법차량에 대해서는 훼손되더라도 보상 책임을 지지 않는 법적 제도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출동한 소방관들이 부담감 없이 화재 현장에서 적극 대응하도록 국가가 보장하지 않는 한 초동 대응 부실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천 화재 참사는 관련 규정을 대부분 지키지 않았거나 제도가 미비해 일어난 예고된 사고였다. 정부는 악순화의 고리를 끊어내는 소방안전 시스템 구축에 시급히 나서고, 정치권은 입법이 필요한 사안에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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