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회에서 마을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무슨 잔치냐며 차라리 상을 차릴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밥이나 많이 해 한 끼라도 배불리 먹이자고 부자들이 결의했다는구먼유. 그러니 뭔 해산물이 나가겠어유.”

“아직도 광아리에는 사람이 있구먼.”

“그러게 말여. 사람이 굶어 죽어나갔는데도 들이닥쳐 부뚜막 솥단지까지 빼가는 놈들이 요즘 부자 놈들인데.”

“우리 동네에서는 애비가 빌려간 양식을 갚지 못하고 죽자 어린 여식아를 부엌때기로 쓴다며 빼앗아간 지주 놈도 있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순리인데, 당연한 순리가 없어진 세상이 되었으니 참으로 답답하오!”

김길성의 이야기기를 들은 임방주들이 모두들 부러워했다.

“그런데 어물을 모두 풀어먹였다는 것은 또 무슨 얘기요?”

단리 임방주 복석근이 원래 이야기 꼬투리를 잊지 않고 있다가 물었다. 

“팔아서 돈 냄새 좀 맡아보려고 했드만, 있는 것들이 안 팔아준다니 어쩌오. 어물이라 팔릴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해서 마을잔치 한다는데 그냥 내놔버렸슈. 없는 것들도 살다 한 번 그걸 횡재라도 만나야 혹시나 하며 살 여력이 생기는 거 아니우?”

“그래도 그렇지, 다만 원전이라도 받고 넘기지 그걸 그냥 퍼주냐?”

북진 임방주 장순갑의 얼굴에는 아까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장 땟거리도 없어 절절 매는 사람들한테 무슨 원전을 받아. 썩어 문들어지기 전에 인심이라도 쓰는 게 좋지.”

김길성은 물건을 떼가 헛일을 하고도 표정이 마냥 밝았다

“흙 파서 장사하냐?”

장순갑이 못마땅해서 핀잔을 주었다.

“그래도 임방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외상을 안 준다고 마을에 소문이 드럽게 났었는데, 한 번 그렇게 퍼멕여 놓고 나니까 사람들 대하는 것이 달라졌구먼요. 그 전에는 팔 물건이 있으면 청풍장으로 쪼르르 몰려가던 마을사람들이 이젠 우리 임방으로 조금씩 오고 있고, 또 점점 불어나고 있소. 좀 여유가 있으면 외상으로 양식을 먼저 주고 나중에 형편이 펴서 받는다면 마을 사람들도 숨구멍이 트고 우리 임방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한 바퀴 돌릴 여력이 없구먼유.”

김길성이 북진본방에서 받아간 물건을 모두 날리고도 또 외상 타령을 했다.

“외상으로 가지고 간 물건 몽땅 날리고도, 또 외상 타령이냐. 본방은 물건 나오는 화수분이냐. 염치 좀 있거라!”

장순갑은 길길성이 하는 말끝마다 못마땅해서 못 살겠다는 투였다.

“그러게 말여.”

장순갑의 질책에도 길길성은 속도 좋다. 김길성이가 장순갑의 말을 수긍했다.

“광의 임방주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본방에서 최대한 방도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뒷바라지를 해드리겠습니다.”

최풍원 대주가 광의 김길성 임방주에게 방법을 찾아 지원을 하겠다고 약조했다.

“본방 대주, 그러면 안 됩니다! 본방에 손해를 끼친 임방주에게는 책임을 묻고 배상을 하게 만들어야지 기강이 섭니다! 그렇게 설렁설렁 넘어가면 누가 열심히 장사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장순갑이 최풍원의 처사가 옳지 않다며 질타했다.

“북진 임방주님, 장사를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질타하고 책임을 묻는다면 불안해서 어찌 장사를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뒷바라지를 해주며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것이 본방에서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

최풍원이 동의를 구했지만 장순갑은 속이 뒤틀렸는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 생각은 외상을 주고 설령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심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먼저입니다. 물건은 또 구하면 되지만 한 번 돌아선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러 임방주님들, 어쩔 수 없는 다급한 경우라면 물건은 버리더라도 사람은 잃으면 안 됩니다. 외상을 주세요!”

최풍원이 각 임방주들을 향해 본방의 장사방법을 강조하며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밝혔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동의를 했지만, 북진임방 장순갑 만은 잠자코 있었다. 최풍원이 그런 그를 보고 무슨 말을 하려다 멈추고는 또 다른 임방들의 사정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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