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풍원은 북진본방에 있는 물산들을 자세하게 파악한 후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 갈 작정이었다. 지금 본방에 있는 물산들이 어떤 물산들이 얼마나 있는지가 가늠이 되어야 충주에 가서도 어느 정도 맞춰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물산들은 들어온 그대로 첩첩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북진을 떠나기 직전 도와주겠다고 했던 순갑이 형님도 남의 집 일보듯 모른 척 했다니 그것도 최풍원은 서운했다. 자신이 북진본방을 비우면 당연히 장석이나 순갑이 형님이 나서서 빈자리를 메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막막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장석이 형, 일단 며칠 동안 본방 물산을 정리하고, 나랑 충주를 다녀와야겠어.”

최풍원은 충주행을 잠시 미뤄두었다.

“충주는 왜?”

“형은 지금 바로 각 임방주들에게 가서 각 집산소에 있는 물산들을 모두 가지고 모래까지 본방으로 모이라고 기별을 해줘. 그리고 물산들을 옮길 때는 청풍도가에서 눈치 채지 못하게 각별히 조심해서 옮겨달라고 해!”

최풍원이 장석이의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본방 관할의 모든 임방주들에게 북진으로 모일 것을 기별하라고 말했다.

장석이가 북진나루를 건너 청풍 읍내로 건너가고 최풍원은 본방에 남아 물산들을 갈무리하자니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다. 우선 북진본방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지금의 인원으로는 도무지 운영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석이가 물산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그것이 원인이었다. 임방주들이 가지고 온 물산들을 정리하여 본방 창고에 쌓고, 또 그들이 임방에서 팔 물산들을 내어주는 두 가지를 동시에 장석이 혼자 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순갑이 형님이 도와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풍원이 혼자 생각일 뿐이었다. 순갑이 형님도 자신의 일이 바쁠 텐데 아무리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라 해도 내 일을 먼저 하고 그 다음 남의 일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내 코가 석자가 빠졌는데 아무리 동생들 일이라고 해도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도와줄 수는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장석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북진본방에 당장 필요한 인원은 물산을 관리할 수 있는 인원뿐만이 아니었다. 또 필요한 인원이 본방과 임방을 수시로 오가며 기별을 할 수 있는 연락책이 급하게 필요했다. 연락책 또한 물산을 관리할 일꾼 못지않게 하루라도 빨리 구해야 할 인원이었다. 장사를 하는데 물건을 사고 파는 일 못지않게 빨리 정보를 입수해 대처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정보를 늦게 알거나 빨리 방비를 세우지 못해 손해를 볼 수 있는 일이 장사꾼에게는 비일비재했다. 북진본방에서 당장 구해야 할 꼭 필요한 인원이 일꾼과 연락책이었다.

최풍원이 행상을 하며 일에 치여 옴짝달싹하지 못해 품을 줄이기 위해 본방과 임방 조직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또 다른 일꾼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세상 근본 이치가 그런 것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생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를 막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 세상일이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생겨나는 모든 일에는 사람들이 해결할 문제였다. 그 문제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로 힘을 보태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모든 세상일이었다. 사람 없이 생겨나는 일도 없고, 생겨나는 모든 일도 사람이 없이는 해결할 수 없었다.

최풍원 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 외에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훨씬 수월하게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뜻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쓰려면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자신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 힘든 판에, 당장 식구들 먹고사는 것도 급급한 판에, 당장 사람을 쓸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사람을 쓰거나 새로운 일을 하는데 망설이게 되는 것이었다. 최풍원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선 당장 급한 불부터 끄고, 어지간한 일은 있는 사람들 힘만으로 해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한계에 부닥친 것이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하지 않고는 그냥 풀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을 써야할 단계가 된 것이었다. 최풍원은 본방에 모이는 모든 임방주들과 그것도 상론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최풍원이 북진본방으로 각 임방주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제일 먼저 당면한 문제는 최풍원이 수일간 청풍인근 향시를 돌아보고 난 후 장시에 관한 문제를 같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 문제는 앞으로 북진본방이 청풍도가를 누르고 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닥치게 될 현안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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