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기는 교리에 있는 향교를 돌보던 사람으로 임방을 하기 이전에는 전혀 장사 경험이 없었다.

“대주, 우리 임방도 문제없습니다. 특히 지난 가을에 갈무리해두었던 대추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올봄 석전제부터 향교의 모든 제에 진설할 물품들은 모두 우리 임방에서 대주기로 유사와 약조가 되어 있습니다.”

교리 임방주 신덕기도 얼굴이 환했다. 

청풍향교는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니 어림잡아도 육백년이 된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이곳은 청풍·금성·수산·덕산·한수 등 다섯 개 큰 마을의 유림들이 모이는 교리의 향교는 위세 높은 곳이었다. 본래 물태리에 있었던 것을 사오십 년 전 교리로 옮겨온 것이었다. 수년 전에는 학동들의 강학을 위해 낡은 명륜당을 새로 손을 보아 말끔하게 단장을 했다. 향교에는 교관과 인근 양반 자제들 삼십 여명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었다. 향교에서 먹고 자며 공부하는 학동들에게 들어가는 물품들도 대단했고, 춘추로 지내는 석전제와 각종 회합들이 열리며 소비되는 물품들이 대단했다. 향교에 들어가는 물품만 잡아도 웬만한 규모의 전 집 한해 매출에 버금갔다. 

“학현임방은 당장 딸리는 물품은 없소?”

“다른 물건들은 좀 남아있지만 곡물들은 예전에 떨어졌습니다요.”

“교리임방은 어떻소?”

“마찬가집니다. 우선 당장 급한 것은 쌀입니다.”

청풍관내 모든 마을에서 쌀이 없어 곤욕을 당하고 있었다. 춘궁기라 그러하기도 했지만, 이토록 먹을거리가 말라붙은 것은 청풍도가의 장난질 때문이었다.

“다른 물산들은 또 필요한 것이 없소?”

“곧 향교에서 석전제가 열리면 거기에 진설할 제사음식이 만만찮습니다. 채, 고기, 메……”

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중구난방으로 물목을 말하였다.

“학현에서도 곧 봄이 되면 물맞이 천렵꾼들이 계곡으로 몰려들 텐데 건어물과 해초가 많이 필요합니다요.”

학현에는 봄만 되면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계곡으로 몰려들었다. 따뜻한 봄날 경치가 빼어난 학현 계곡에서 하루를 즐기려는 것도 있었고, 이곳에는 위장병에 신효하다는 광천수가 솟고 있었다. 새싹이 돋기 전 이물을 마시면 일 년 내내  배앓이를 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이 마을에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잎이 눈을 틔우는 이른 봄이 되면 인근 마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미역국과 북어국을 끓여먹으며 광천수를 즐겼다.

“알겠소이다. 내가 사흘 뒤 기별을 할테니, 두 분 임방주께서는 그때 필요한 물목을 적어 가지고 오시오. 그리고 그동안 장사를 하며 모아놓은 물산들을 모두 북진본방으로 가지고 오시오!”

최풍원이 두 사람에게 이르고는 북진본방으로 돌아왔다.

⑤ 도거리로 장사 기반을 다지다

북진으로 돌아온 최풍원은 본방의 물산들부터 점검을 했다. 최풍원이 여러 날 청풍 인근 향시를 돌며 가장 시급하다고 느낀 것은 곡물이었다. 무엇보다도 곡물부터 구해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 허기를 면하게 하는 것이 시급했다. 고을민들의 사정을 알아보고 굶주림을 해결해야 할 주체는 청풍관아의 관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도끼자루에서 새싹 돋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청풍도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사꾼들의 소임 중 하나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부족한 물건을 서로 구해다주고 대가를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청풍도가의 장사꾼들은 부족한 물건을 공급해주기는커녕 곤경에 빠진 고을민들을 이용해 악독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장석이 형, 지금 본방에 물산들이 얼마나 들어와 있어?”

“글쎄다. 들어오는 대로 쌓아놓기는 했는데.”

“그걸 쌓아놓기만 하면 어떻 해. 물목별로 분리를 해놓아야지.”

최풍원이 핀잔을 주었다.

“어떻게 하라고 얘기도 하지 않았잖어! 그리고 혼자서 어떻게 이것저것 다 해!”

장석이도 성질을 부렸다.

“순갑이 형이 도와준다고 하잖았어?”

“너 떠난 이후로 본방에 코빽이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

“그걸 낸들 어떻게 알어!”

장석이가 풍원이 핀잔에 빈정이 상했는지 묻는 말마다 심통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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