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용백이와 북진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조를 한 후, 최풍원은 주막집에서 나귀를 찾아 버들장수와 천용백이로부터 사들인 물건을 싣고 수산장을 요목조목 둘러보았다. 조선팔도 어디를 가든 산천도 비슷비슷하고 사람들 사는 모습도 거기가 거기니 수산장도 별다를 것은 없었다. 장사꾼들이 장바닥에 풀어놓은 것들은 모두가 입을 것 먹을 것들이었다. 그 둘 중에서도 단연코 많은 것은 먹을거리들이었다. 사람에게 먹는 것만큼 중한 것은 없었다. 입지 않고는 살 수 있어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 입성보다 먹성이 중하니 당연했다.

그런데 그 중한 먹을거리들 중에서 주식인 쌀과 잡곡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먹을거리라고는 뿌리와 콩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당장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풍원이 북진을 떠나 둘러본 장마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땟거리가 귀한 춘궁기라 해도 장마다 이처럼 말라붙을 수는 없었다. 분명 누군가가 장난질을 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수산장은 산지에 서는 장이었다. 게다가 고을과 고을을 연결하는 길목이었으므로 한길을 따라 양편으로 민가들이 늘어서있고, 그 사이사이로 길을 따라 길게 장이 열렸다. 그러다보니 장마당에는 모든 장사꾼들이 얽히고설키고 산물들도 서로 뒤섞여 어수선했다. 최풍원이 당나귀를 몰고 일자로 쭉 뻗은 장터를 따라 이곳저것을 살피며 장구경을 했다.

“누가 이런 걸 가지고 나와 니 맘대로 팔라고 했어!”

“내 물건 내가 파는데 누구 허락을 받는단 말이오?”

장마당 한쪽에서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악다구니가 벌어지고 있었다. 최풍원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 그러는 거요?”

최풍원이 구경꾼들 중 한 명에게 영문을 물었다.

“저 사람은 쌀을 팔려 하고, 저 사람은 못 팔게 막는 것 같소.”

구경꾼이 손가락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왜 그러는 거요?”

“그게 궁금하니까 보고 있는 것 아니오?”

구경꾼도 싸움구경에 방해가 되니 귀찮아했다. 최풍원도 잠자코 구경꾼들 틈에 끼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동태를 살폈다.

“쌀은 우리한테 허락을 받고 팔아야 되는 걸 모른단 말여?”

“그런 법이 어디 있소!”

“여기 있잖어. 장에서는 우리가 법이여!”

“내 물건도 매 맘대로 팔지 못하게 하는 이런 억지가 어디 있소!”

“이 호로놈에 자식, 귓구멍에 말뚝을 쳤나 왜 똑같은 말을 자꾸 시켜!”

“이런 말귀를 못 알아 처먹는 촌놈은 주먹다짐이 명약이여!”

“비싼 밥 먹고 뭣하러 엠한 데 힘을 써, 그냥 조져!.”

같은 패거리들인지 이번에는 아예 떼거리로 달려들어 한 사람을 겁박했다. 그러고 보니 말투도 귀에 익은 소리고, 면상도 눈에 익은 패거리들이었다. 최풍원이 눈여겨 찬찬히 살펴보니 어제 주막에서 만났던 청풍 김주태 수하인 무뢰배들이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어여 우리한테 넘겨!”

무뢰배가 눈을 부라렸다. 또 한 놈은 그 사람의 쌀자루를 잡아채려 했다.

“이건 임자가 따로 있단 말이오!”

쌀자루 주인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용을 썼다.

“이런 놈은 본때를 보여줘야 해!”

무뢰배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쌀자루 주인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질을 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무뢰배의 한방에 쌀자루 주인은 힘없이 땅바닥에 널부러졌다.

“옛다, 쌀값이다!”

무뢰배가 쓰러진 쌀자루 주인 등짝 위로 베 한 두루마리를 던졌다.

“나쁜 놈의 새끼들!”

“저 베는 질이 나빠 옷도 지어 입을 수 없소! 장에 내놔야 아무도 사려고 하질 않는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거요.”

구경꾼들이 장마당을 휘적거리며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나서는 무뢰배들을 보며 뒷소리를 해댔다.

“왜 쓸 데가 없어! 관아에서 받잖어!”

“하긴 그렇군. 개수만 채워놓으면 되니.”

김주태는 무뢰배들을 거느리고 청풍 인근 장을 돌며 저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주태가 청풍관아에서 이방질을 하고 있으니 저런 불법질도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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