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을 바꾸는 것은 농민을 위해서라고 포장을 했지만  결국은 세금을 더 거둬들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눈가림에 불과했다. 농민들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이 생산한 농작물들을 값싸게 팔수밖에 없었고, 지주들이나 상인들은 그것들을 헐값으로 사들여 폭리를 취하고 게다가 돈의 가치를 높이고 이자에 이자까지 얹어 농민들을 수탈했으니 금납화에 따른 혜택은 상대적으로 지주나 상인들에게 돌아갔다. 이러나저러나 종당에 죽어나자빠지는 사람은 농민들이었다.

지주들은 소작인이 굶어 죽어나가도, 상인들은 장꾼들이 어떤 물건을 필요로 하는지, 관리들은 고을 농민들 형편이 어떤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설령 나라가 망한다 해도 눈 한 번 깜짝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창고에는 몇 대를 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을 재물이 그득그득하게 쌓여있으니 걱정할 일이 없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귀신도 살 수 있었다. 그러니 난리가 난다해도 적들조차 재물로 구워삶을 위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나라님인들 무섭겠는가.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무슨 짓을 벌이더라도 무슨 욕을 얻어먹더라도 돈만 모으는 일 뿐이었다.

“그래도 어떤 고을에서는 부자가 자기 집 울밖에 뒤주를 내놓고 배곯는 마을사람들에게 쌀을 퍼가게 한다는구만.”

“이런 드러운 세상에도 그런 성자가 있구먼!”

“타고난 씨가 양반이라 양반이 아니고, 그런 사람이 양반이여!”

“그런 양반들이 있어 그나따나 세상이 망하지 않는 거여. 안 그러면 뒤집어져도 진작에 열두 번은 뒤집어졌을거구먼!”

“그래도 고을 원님은 자기가 선정해서 농민들이 잘 살고 있다고 믿겠지.”

“언제는 우리네가 원님 덕 본 적이 있는가. 우리 같은 천 것들은 우리가 알아서 살아야 하는 겨!”

“그나저나 오늘 수산장은 어떨러나 모르겠구만.”

“나가봐야지!”

매일처럼 속고 사는 것이 장돌뱅이들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오늘은 장사가 좀 되겠지, 저녁이 되면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하며 하루를 또 살아내는 힘이었다. 그렇게라도 스스로 속아가며 위안을 얻지 못하면 사는 것이 너무 팍팍해서 버텨내기가 여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보시오, 버들장수 양반! 지고 온 바구니를 내게 전부 넘기시오!”

최풍원이 송계에서 왔다는 버들장수의 바구니를 몽딴 사겠다고 말했다.

“저 많은 걸 워디에 쓰려고 다 산단 말이우?”

버들장수가 믿어지지 않는 투로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거야 사는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지, 파는 사람이 뭣하러 걱정을 하시오.”

“나야 팔면 좋지만, 그래도 저 많은 것을 한꺼번에 산다하니 왜 걱정이 되지 않겠소이까?”

제 욕심만 차리지 않고 남도 걱정해주는 그런 마음이 본래 우리네 인정이고 인심이었다. 천용백은 자기 물건을 팔아준다고 하는데도 사가는 최풍원 걱정부터 앞세웠다.

“일단 내가 산다고 했으니, 가지고 가 삶아먹든 끓여먹든 내  할 일이니 과히 걱정은 접어두시오!”

“한꺼번에 산다니 그러면 싸게 드리겠우.”

이번에는 버들장수가 싸게 주겠다고 했다.

“그러지 말고 다음에나 싸게 주시오!”

“다음에?”

최풍원의 다음에라는 말에 버들장수가 언뜻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되물었다.

“나는 북진본방의 최풍원이오. 내가 수일 내에 다시 한 번 사람을 보내 기별할 테니, 그때나 금을 잘 맞춰주시오!”

“당최 뭔 말인지…….”

최풍원의 뜬금없는 말에 버들장수는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지게를 지고 따라 나서시우!”

최풍원이의 말에 버들장수가 지게를 지고 일어섰다. 세 사람은 주막을 나와 천용백이 피륙을 펼쳐놓은 난전으로 갔다.

“형님, 난 수산장을 둘러보고, 금성 안암장으로 해서 북진으로 가야겠오. 그리고 형님 다음 파수에 북진에서 만나자는 약속 잊지 않았쥬?”

“꼭 가겠네!”

“그리고 형님이 사놓은 약초도 몽땅 내게 넘기시우.”

최풍원이 천용백이 피륙을 주고 바꿔놓은 약초더미도 자신에게 팔라고 했다.

“어허 이번 파수엔 이래저래 동생 덕을 너무 많이 보는구먼!”

천용백이 어쩔 줄 몰라 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