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유비(劉備)가 익주를 손에 넣었을 때 조조는 한중을 차지하여 위나라 왕에 책봉되었다. 이에 유비가 장비를 앞세워 한중을 공략하자 조조 군의 부장인 장합이 맞섰다. 장합은 장비와 일대 격전을 펼쳤으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싸움이 불리해지자 병사들을 이끌고 와구관이라는 좁고 험한 산길로 도망가 틀어박혔다. 장비가 여러 날 밤낮으로 공격했지만 장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와구관은 천혜 요새로 정면 공격으로는 도무지 적을 제압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장비는 일단 군대를 후퇴시키고 정예부대만을 이끌고 직접 정탐에 나섰다.

“정면을 쳐서는 이길 수 없다. 혹시 와구관 뒤쪽으로 통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

이어 와구관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 적의 진영을 관찰하였다. 참으로 지세가 험하고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와구관 뒤쪽 골짜기에 덩굴에 매달려 올라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짐을 짊어진 중년의 남녀 농부였다. 장비가 부하들에게 명했다. “당장 저들을 공손히 모셔오라. 결코 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부하들이 농민을 데려오자 장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그러자 농부가 말했다. “저희는 한중에 살고 있는데, 마침 전쟁 중이라 큰길로 갈 수 없어 이곳 재동산 뒷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려는 중이었습니다. 재동산 뒷길은 바로 와구관 뒤쪽과 통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크게 기뻐한 장비는 농민의 안내를 받아 정예부대를 이끌고 와구관 뒷길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하인 위연에게는 정면에서 총공격을 하도록 명했다. 위연이 군대를 이끌고 정면에서 공격해오자 이를 바라보던 장합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 어리석은 놈들아, 이곳은 천혜의 요새다. 어디 공격할 테면 해보아라!”

그런데 갑자기 전령이 달려와 장합에게 알렸다.

“장군, 큰일 났습니다. 뒤쪽 곳곳에 불길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러자 장합이 뒤를 돌아보았다. 과연 와구관 뒤쪽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정면 방어에 정신을 판 사이에 장비가 뒤편으로 접근하여 불을 질렀던 것이다. “도대체 적이 어디서 들어왔다는 것이냐?”

서둘러 장합이 부하들에게 뒤를 방어하라 명했다. 하지만 장비가 창을 휘두르며 사납게 나타났다. 감히 누구도 나서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상황이 어렵다고 판단한 장합은 이내 줄행랑치고 말았다. 따르는 병사가 겨우 10여 명 남짓했다. 지리적 유리함을 알고도 지키지 못한 장합은 대패하였던 것이다. 이는 ‘삼국지’에 있는 이야기이다.

위지즉모(圍地則謀)란 적은 유리하고 아군은 불리한 지형일 때 지혜를 써야 한다는 뜻이다. 위지는 좁은 길목 또는 험한 산길이다. 이런 곳에서 적과 마주치면 악전고투해야 한다. 그러니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 일단 들어가면 빨리 나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한다면 몇 번이고 정찰병을 보내 거듭 확인하고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대장은 명성이나 부를 얻었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모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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