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그곳에 그가 산다. 지난겨울 모진 칼바람이 불던 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거처를 이리로 옮겼다. 그가 사는 105동엔 참 다양한 이들이 함께 모여 산다. 세대주들의 편차도 아주 심하다. 그의 바로 옆집엔 일곱 살짜리 은별이가 세대주고 뒷집엔 건장한 청년이 주인이다. 오가는 이들의 모습도 천차만별이고 어느 집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아예 아무도 오지 않는 집들도 있는 것 같다. 유리창에 먼지가 얼마나 쌓였는지 주인의 문패도 사진도 희미해 보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를 보내 놓고 수개월 후에야 보러 온 나를 “형수님 오셨느냐”며 반가이 맞이한다. “날씨가 추워서이기도 하고 너무 분주해서였다”는 등의 궁색한 핑계를 대는 내게 괜찮다며 평소처럼 소리 없이 웃는다. 혼자라면 쓸쓸할 텐데 옆집 은별이도 있고 뒷집 청년도 있고 함께 말벗이 되어 줄 이웃들이 있어 지낼 만 하단다. 며칠 전에 집사람이 손자 녀석을 데리고 왔었는데 그 사이 아이가 훌쩍 컸더라. 며 웃는 모습이 짠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린다. 건너 편 집에 손님이 찾아 온 것 같다.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와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아이와 나는 밥도 잘 먹고 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란다. 남자의 말로 봐서 건넛집 세대주인 중년 여인은 그의 아내인 모양이다. 그녀가 이 곳으로 거처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내가 두고 온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을 염려하느라 편치 못할까봐, 아내를 먼저 보내놓고 힘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짐하는 듯한 그의 모습이 애잔하다.

옆집 은별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웃는 모습이 해맑다. 유리문이 맑고 투명한 것으로 보아 엄마 아빠가 다녀간 모양이다. 오늘도 애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많은 눈물바람을 일으켰을까. 어린 딸을 이곳에 홀로 두고 가야하는 발걸음인들 오죽했을까.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서성였을 아이의 부모가 눈에 선하다.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문을 열고 뛰어 나와 부모 품에 안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싶어 순간 목이 멘다.

그리 긴 세월을 살았다 싶지 않은데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가족과의 헤어짐이 여덟 번이나 있었다. 양가의 부모님들이 떠나시고 아래로 동기간들과의 아픈 헤어짐을 맛보아야 했다. 어머니, 아버지를 보내드린 뒤 끝없는 상실감에 허우적거렸다. 그 분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 앞에 절망하고 또 절망 했다. 무기력감으로 몸도 마음도 가눌 수가 없었다.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만 봐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는 내가 그 분들을 얼마나 사랑했나, 그렇지 않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생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보다 근원적인 절망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슬픔의 농도는 점점 옅어져 갔고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더러는 아팠던 기억들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는 아마도 그 분들의 떠남을 순리로 받아들이려는 나의 이기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면 아래로 두 제부들이 떠난 지 수 십 여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아프다. 인간이 생각하는 통상적인 상식의 잣대로 보았을 때 명을 다하지 못하고, 해야 할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떠나버려서인지 모른다. 망부석이 되어가는 동생들을 보면서, 어렸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속으로 늘 안개비가 내렸다. 어떤 때는 우리부부가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괜스레 미안했다. 떠난 그들이 보고 싶고 때로는 원망스럽고 안타깝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2반 길채원 학생의 어머니 허영무 씨의 절규다.

“암환자는 마음을 좋게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살아간다는 걸 감사하라는데, 아이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감사하라는 건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느님의 자비가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거니까 처음에는 하느님을 부정하게 되잖아요. 저는 갈 데가 없어서 결국 하느님한테 다시 돌아갔어요. 천국이라는 희망조차 없으면 우리 채원이는 그저 암흑일 뿐이니까.” (‘금요일엔 돌아오렴’ 218쪽에서)

산자와 죽은 자와의 거리는 극명(克明하)다. 함께 이야기 하며 산책하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를 돌봐 주었던 이들 중 누군가가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곁을 떠나 현존에서 부재가 되어버린 상황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언어는 없다. 죽음이라는 것으로 나뉜 상실의 고통을 껴안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 끝없이 절망한다. 사랑하기를 멈추어야 하는데 멈출 수가 없다. 어느 누구도 좁힐 수 없는 삶과 죽음과의 거리 앞에 떠나는 이나 남은 자 모두 망연자실해 한다.

삶과 죽음과의 경계는 무엇일까. 죽음도 삶의 일직선상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애써 외면하려 드는 게 산자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생각하시오’ 두렵고 떨리는 한 마디가 바람을 가르고 귓전을 울린다.

이 세상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는 없다. 누구도 생명의 연한에 대해 알 수 없다. 인간의 잣대로 이만큼 살았으면 되었다는 말을 들으며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이는 인간의 권한 밖이니 어찌하랴. 생명을 주신이도 그분이고 거두어 가는 이도 그분이기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이는 오로지 그분의 영역이기에 그분의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으리라.

사위(四圍)가 조용하다. 이곳 105동도 적요(寂寥)하기 그지없다. 좀 전만해도 새로 입주하는 이로 해 한 바탕 소용돌이가 일었었는데 이제 그들도 돌아가고, 어린 아들과 함께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두런대던 중년남자도 돌아간 것 같다. 돌아서 나오는 길 사랑하는 이들이 숱한 이야기를 담아 두고 간 꽃다발에서 나는 향기가 난분분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