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말이오. 예전에는 도둑이 주인을 겁냈는데 이젠 겁도 내지 않는대요. 주인에게 들키면 도둑은 줄행랑을 치는 것이 상례인데, 도망을 치기는커녕 이젠 도리어 주인이 소리를 질렀다고 도둑이 달려들어 행패를 부리는 세상이니 도대체 곤두박질을 쳐도 너무 곤두박질을 치는 것 아니요?”

“군졸들이 지키고 있는 턱 밑에서 그런 일을 버젓하게 저지르는 도둑이 우리네 같은 장사꾼쯤이야 무서워하기나 하겠소?”

최풍원과 천용백도 장사꾼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먹고 살기가 팍팍해지면 사람들 마음도 각박해지는 것일까. 사람들 인심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먹고 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나날이 살벌해져가는 인심도 큰 걱정거리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들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흉폭하고 끔직한 사건들이었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굶주림에 불안한 마음까지 이중삼중으로 고통스러움을 견뎌내야 했다. 흉년이 들어도 춘궁기가 되어도 가진 자들은 걱정이 없었다. 이래저래 그저 죽어나는 것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형씨는 어디서 왔수?”

천용백이 물었다.

“송계요.”

“송계면 한수장을 보는 게 편하지 않수?”

“그야 그렇지만, 이걸 빨리 팔아야하니 어쩌겠슈.”

그 장사꾼이 지게다리 위에 자신키의 두 배는 됨직하게 쌓아올린 짐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지게에는 대와 싸리로 만든 바구니, 채반, 다래끼, 발, 용수, 갓, 심지어는 제기에 이르기까지 실려 있었다. 그는 산죽이나 싸리가지를 다듬어 생필품을 만들어 파는 버들장수였다.

“저걸 오늘 수산장에서 다 팔 거요?”

“그러면 좋겠지만 장사가 어디 내 맘대로 되는 거요? 사가는 사람 맘이지.”

“이 정도 만들려면 겨우내 만들었겠소이다.”

“작년 가을 추수 이후 여적지 만든 것이요.”

“이런 것은 곧 봄도 오고 농사철이 될 테니 잘 팔릴 거 아니오?”

“그야 그렇지만 워낙에 많이 쏟아져 나오니 살 사람보다 물건이 많으니 장사가 되겠소? 지난 한수장에는 장바닥이 전부 다 대장사였다우.”

“왜 그렇게 많이 쏟아져나왔다우?”

“산골에서 겨우내 할 일이 뭐있겠수. 더구나 춘궁기 되면 양식이라도 팔아먹을까 해서 집집마다 만들어내니 동네가 다 대바구니요!”

“왜 그렇게 많이 만들어낸 거요?”

“송계는 마을 뒷산만 가도 온통 산죽에다가 싸리밭이니 재료가 흔하기도 하고, 애 때부터 집안 어른들이 만드는 것을 보고 배워온 터라 손재주도 좋아 못 만드는 것이 없소!”

“그래 수산장에서 다 못 팔면 다시 어디 장으로 갈 거요?”

“금나가는 비싼 물건이야지 여기저기 장을 돌지, 이깟 검불 같은 대바구니 팔아 주막집에서 탁주 사발은 고사하고 밥값이나 나오겠우. 수산장은 송계에서 바삐 걸으면 해동갑에 오갈 거리니 온 것이지, 먼 곳은 못 가오!”

월악산 영봉이 있는 송계에서 수산장까지 오려면 복평, 서창, 덕평에서 봉화재를 넘어 오티로 해서 오십 리쯤 되는 거리니 하루 왕복이 가능했다.

“그럼, 수산장 보고 다시 송계로 가겠구려?”

“그래야지요.”

“그럼, 물건을 팔려면 며칠 뒤 한 수장에나 나가봐야겠구려.”

“그래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자기 물건을 팔려고 그러다보니 얼굴 붉히는 일은 여사고, 심지어는 주먹다짐까지 벌여 척을 진 사람들까지 있소. 먹고사는 게 뭔지, 살기가 팍팍하니 동네 인심이 이전 같지가 않다오. 그래도 이전에는 배는 고팠지만 서로 마음이라도 기댈 수 있어 좋았는데…….”

버들장수는 예전 마을 인심이 그리운 듯 말끝을 흐렸다.

최풍원은 송계에서 왔다는 버들장수 이야기를 들으며 가격이 싸서 인근 장만 도는 대바구니를 한데 모아 먼 장에 내다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만드는 것에서 팔러 다니는 것까지 해야 하는 마을사람들도 힘도 덜 들고 돌아다니며 쓰는 돈도 줄어들 일이었다. 장사꾼들은 대바구니를 그만큼 싸게 사서 산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팔면 이득도 훨씬 더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지금은 팔러 다니는 일 때문에 농한기에만 만들고 있지만, 대신 구매해서 판매를 누군가 대신 해준다면 농사철에도 틈나는 대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마을사람들은 수입이 늘어나 좋고, 장사꾼은 물건 수급이 끊이지 않고 안정되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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