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태가 핏대를 올렸다.

“내가 지금도 서방님 머슴인 줄 아시오!”

“네, 이놈!”

김주태가 호통을 쳤다. 그 소리에 봉놋방에 있던 무뢰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르신, 무슨 일이오니까?”

무뢰배들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당장 네 놈을 이 자리에서 요절을 내고 싶다만, 그래도 옛정이 남아 그냥 두니 당장 이 방을 나가거라!”

김주태가 호령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소! 내가 서방님을 요절내야 맞지, 어째 서방님이 나를 요절낸단 말씀을 하시오?”

최풍원도 굽히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뭣이라고! 네 놈이 죽기를 자처하는구나!”

김주태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봉변당하기 전에 어서 나가슈!”

무뢰배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겁박했다.

“오늘은 그냥 갑니다만, 반드시 보연이를 찾으러 갈 것입니다! 서방님, 기다리시오!”

최풍원이 김주태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저놈이!”

김주태가 앉은 자리에서 발을 쾅쾅 굴렀다.

뜻하지 않게 수산 주막집에서 김주태를 만나는 바람에 최풍원은 묵은 감정이 되살아났다. 보연이를 생각하면 통째 갈아먹어도 시원찮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쳐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두려워 김주태를 어쩌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죄지은 놈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한밤중에 주막에서 쫓겨난 최풍원과 천용백은 장이 설 장터로 나섰다. 그믐밤이라 하늘에는 달빛 한 점 없이 깜깜했다. 달빛이라도 푸근하면 지금의 썰렁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실 것 같았다. 캄캄한 한밤중에 장터를 어슬렁거리자니 가슴은 더더욱 저렸다.

“어떻게 저런 큰장사꾼을 알어?”

천용백이 물었다.

“…….”

최풍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저런 큰장사꾼을 알고 있었다면 그 밑에 들어가 장사를 배웠겠구먼.”

최풍원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천용백은 김주태와 같은 큰장사꾼을 잡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투였다.

“형님, 이제 또 다른 주막을 찾아가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오늘은 장바닥에서 노숙을 해야할까보우?”

“그려, 돈도 아끼고 장사할 터나 일찍 잡아놓고 게서 눈 좀 붙이지.”

최풍원도 장사를 하러다니며 노숙이야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천용백이처럼 장돌림을 하는 장사꾼이 장바닥에서 자는 것은 일상사나 다름없었다. 장사꾼들이 장바닥에서 노숙을 하는 것은 우선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오늘처럼 저녁도 되기 전 일찍 다음 장이 열리는 곳까지 온 날은 주막에 들어가 모처럼만에 팔다리 펴고 하룻밤을 자도 돈이 아깝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밤새 걸어 다음 장이 열리는 장터에 겨우 도착하거나, 새벽녘에야 당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럴 때는 주막에 들어가야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날이 새기 전 나와야 하니 거저 돈을 버리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래서 장사꾼들은 그 돈을 아끼기 위해 이튿날 장사를 자리를 미리 잡고 그 자리에서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는 경우가 허다했다. 장이 열릴 수산 장터에는 이미 드문드문 장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도 저기 사이에 자리를 잡지.”

천용백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장터 어느 곳인가를 가리키더니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러더니 나귀등에서 내린 등짐을 풀어 그 속에서 홑청을 꺼냈다. 그러더니 주변에서 구해온 몇 개의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홑청을 뒤집어씌워 하늘을 막고 바람막이를 만들더니 순식간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수도 없이 겪었는지 어둠속에서도 뚝딱뚝딱 능숙하게 놀리는 솜씨가 마치 요술쟁이처럼 신기했다.

“형님 참 대단하우.”

최풍원이 감탄을 했다.

“이깟 것이야 자시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돈만 잘 벌린다면 이깟 것 하룻밤에도 수백 번은 걷었다 치웠다 하겠네! 자 들어가 잠시라도 눈을 붙여보자구.”

천용백이 들어가자 최풍원도 따라 들어갔다.

“형님, 생각보다 훨씬 아늑하네요!”

“낼 식전에 집세나 톡톡히 내!”

최풍원이 흡족해하자 천용백이 숙박비를 내라며 농담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용백은 코를 골며 잠에 떨어졌다. 달 없는 하늘에 별만 총총히 빛났다. 최풍원은 김주태의 뻔뻔한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