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들은 당장 땟거리가 없어 배를 곯고 있는데, 관속이나 상인들은 그걸 이용해 배를 불리고 있으니 아무리 생각이 없는 무뢰배들이라 해도 그걸 옳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음에 거슬려도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 주인 눈치를 살피며 그저 참고 있을 뿐이었다. 당장 살려면 어쩔 수없이 굴종을 해야만 했다. 그러고도 얼마간을 더 주막집 마당에서 무뢰배들과 노닥이다 최풍원과 천용백이 방으로 들어간 것은 그래도 밤이 꽤 이슥해져서였다.

“누구는 오늘도 구린내 나는 봉놋방 신세고, 누구는 분내 나는 안방행이니 참으로 서글픈 인생이구만!”

“이눔아, 니눔 같은 팔자에 말간도 황송한데 봉놋방을 탓하더냐?”

“똑같은 인생인데, 우째 나는 이렇게 지지리도 박복하게 났단 말이냐. 하도 한심스러워 하는 말이다.”

“좋은 술 먹었으면 게걸거리지 말고, 기분 좋게 자빠져 자!”

술자리가 파하자 주모가 각자 들어갈 방을 정해주었다. 그러자 무뢰배들이 술김에 신세 한탄들을 늘어놓았다.

두 사람이 무뢰배들과 갈라져 주막 안쪽 방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이 인기척을 내며 방으로 들어서는 대도 김주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김주태는 두루마기를 벗어 횃대에 걸어놓고 적삼과 속고의 차림으로 앉아 치부책인지에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최풍원은 가슴이 마구 둥당거렸다. 최풍원이 머슴을 그만두고 나온 이후 처음으로 대하는 김주태 얼굴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만감이 교차했다.

“서방님 그간 무고하셨소이까?”

풍원이가 구부리고 있는 김주태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누고?”

그제야 김주태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저를 모르겠소이까?”

최풍원이 앞으로 나서며 김주태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기는 한데…….”

김주태는 최풍원을 얼른 알아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서방님, 최풍원이옵니다!”

“아니! 네가 풍원이란 말이더냐?”

김주태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김주태는 최풍원을 알아보지 못했다. 최풍원은 김주태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때와는 너무나도 많이 변해있었다. 그때는 열다섯 나이로 야리야리한 어린 티를 채 벗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장정 티가 역역하니 김주태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실로 오랜만에 서방님을 뵙습니다.”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더냐?”

“이 분을 따라 장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최풍원이 천용백을 내세워 거짓말을 했다.

“무슨 장사를 하는고?”

“피륙상입니다요.”

김주태가 최풍원에게 물었지만 천용백이 대신 대답을 했다.

“서방님, 보연이는 잘 있는가요?”

최풍원이 보연이 소식을 물었다.

“으흠…….”

김주태가 헛기침을 하며 가타부타 대답을 피했다.

“곧 보연이를 찾으러 가겠습니다. 이젠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여동생이라도 이젠 출가를 해서 남의 식구가 된 것을 뭘 찾아가고 말고 한단 말이냐?”

말은 나지막하고 부드러웠지만, 김주태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의 말 속에서 강한 경고 투가 느껴졌다.

“서방님,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는 거요?”

어린 나이에 제대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상늙은이에게 꺾여버린 보연이를 생각하면 가슴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보연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다면 김주태가 저리 말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최풍원도 지지 않고 김주태에게 따지고 들었다.

“내가 잘못 이른 말이라도 있더냐?”

김주태가 뻔뻔스런 얼굴로 최풍원에게 되물었다.

“어린 저희 남매에게 그런 짓을 하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단 말이오?”

“죄책감이라니? 의지가지없는 것들을 거둬 먹여주고 입혀주고 한 것도 잘못이란 말이더냐?”

“그 어린 것을 상늙은이 노리개로 삼아놓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시오?”

“아니, 이놈이 보자보자 하니 감히 어디다 대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머슴놈 주제에 주인을 그리 대하고도 몸이 성할 듯 싶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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