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사길에 재미는 좀 보았소이까?”

무뢰배의 말투 속에서 은연중 비아냥거림이 묻어났다.

“재미를 톡톡히 보았소!”

천용백도 무뢰배의 말투에 속이 상했는지 흰소리를 쳤다. 분명 최풍원에게는 집을 떠난 지 벌써 한 삭이 넘었는데 보리 반 섬을 벌었을까 말까하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무뢰배에게는 아주 많이 이득을 남긴 것처럼 과장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용백이 허풍을 떤 것은 무뢰배의 말투가 거슬려서 그랬다기보다는 장사꾼들의 몸에 밴 습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최풍원도 장사꾼들의 그런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객지를 떠도는 장사꾼들은 함부로 속내를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죽는 소리를 할 필요는 더더구나 없었다. 힘들다고 죽는 소리를 해봤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객지를 떠도는 장돌뱅이들 관계가 그랬다.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것이 있으면 찰떡처럼 들러붙었지만, 조금이라도 아쉬운 소리를 할 낯이면 쉰 개떡 버리듯 했다. 그게 객지에서 만난 장사꾼들 인심이었다. 그러니 뭐라도 얻어먹을 것이 있거나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없어도 있는 척을 해야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를 당하지 않는 길이었다.

“그래봐야 장돌림으로 하는 장사, 그거 얼마 되겠수? 우리 이방객주처럼 뭉탱이 장사를 해야 걸찍하게  떨어지는 게 있지.”

“이방객주라는 분은 대체 무슨 장사를 하는데 이렇게 여럿 수하들을 거느리고 다닌다우?”

“우리 쥔은 청풍관아 이방을 하며 청풍도가를 잡고 있는 분이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더니, 무뢰배가 뻐기며 자기 주인 자랑을 했다.

“우리 주인님 이름을 당신이 어찌 아슈? 벌써 경상도까지 주인님 이름이 뜨르르 한가보구먼!”

최풍원도 혹시나 해서 물어본 말이었다. 그런데 아까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방으로 들어간 자가 김주태라니 최풍원은 가슴이 철렁 앉았다. 김주태를 수산 장터 주막집에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최풍원도 북진본방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억지로라도 보연이를 데려와 안살림을 맡길 작정이었다.

“문경 관아와는 뭘 거래하러 갔다 오는 길이오? 아주 큰 재미를 봤나보오!”

천용백이 은근슬쩍 떠보았다.

“청풍 관아에서 풀은 구휼미를 문경 관아에 넘기고 오는 길이오.”

“구휼미를 마음대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국법을 어기는 일 아니오?”

“법대로만 산다고 누가 상을 준다요?”

“새재 관문을 통과하기가 어려웠을 거 아니오?”

최풍원이 물었다. 최풍원은 새재 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넘어가거나 넘어오려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관헌들의 감시와 몸수색을 거쳐야했다.

“그러니까 관헌들 눈을 피해 새재를 두고 하늘재로 해서 동로로 돌아 문경을 간 것 아니오? 하늘재는 길이 좁고 거칠어 우리가 모두 등짐을 지고 갔다 오는 길이오.”

“그래서 떼로 다니는거구려. 관아 구휼미는 어떻게 빼돌린거지요?”

“그건 저가 우리 이방객주가 하는 일이니 우린 알 수가 없는 일이지.”

무뢰배가 김주태가 있는 방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청풍장에 쌀이 턱없이 딸리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김주태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그만큼 댓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최풍원은 그것이 무엇인 지 궁금해졌다.

“그럼, 쌀을 넘기고 돈으로 받아왔는가요?”

“웬걸, 도로 넘어올 때는 피륙을 짊어지고 오느라 죽을 똥을 쌌다우!”

청풍의 구휼미를 넘겨주고 문경의 피륙으로 받아왔다는 것이 이상했다. 지금은 춘궁기라 피륙보다는 양식 한 됫박이 더 아쉬울 때였다. 피륙은 똥값이고, 양식은 금값이었다.그런데 먹지도 못하는 피륙을 가지고 왔다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김주태의 성격상 절대로 손해 볼 일을 하는 자가 아니었다.

“피륙보다야 양식이 잘 팔릴텐데, 그 먼데까지 가서 피륙은 뭣 하러 바꿔왔대요?”

천용백이 비아냥거렸다.

“그게 큰 장사꾼하고 조무래기 장사꾼 차이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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