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명문사학에 정지용 시인의 문학정신 새기다
일본 명문사학에 정지용 시인의 문학정신 새기다
  • 황의택 기자
  • 승인 2017.12.0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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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문화원, 동지사대학서 문학포럼
▲ 일본정지용 문학포럼 한국 방문단이 일본 동지사대에 있는 정지용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정지용 시인 국제적 위상증진·한일 민간문화 발전 도모

문학 강연·한글콘테스트 개최…일본인 등 100여명 참여

김승룡 문화원장 “세계의 문화콘텐츠 되도록 연구 필요”

‘향수’의 시인 정지용(鄭芝溶·1902∼1950)을 기리는 백일장과 문학포럼이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일본 최고의 명문사학 동지사대학에서 열렸다.

이번 일본 정지용 문학포럼은 정지용 시인에 대한 국제적 위상증진과 국제화로 외부 콘텐츠를 강화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문학인으로 포럼 및 한글콘테스트를 통한 한일 양국 민간문화교류를 발전시키고자 한국에서 김승룡 옥천문화원장을 비롯해 20여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참석했다.

먼저 순방 첫날 동지사대 문화포럼일행은 동지사대 기타가와 마사아키 부학장 겸 국제협력추진기구 위원장 일행과 옥천군, 옥천문화원이 양국의 민간문화발전방향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을 가졌다.

이번 간담회에서 기타가와 부학장은 “정지용 시인의 영향으로 일본을 비롯해 중국, 한국에서 문화제가 열린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옥천군·옥천문화원 주최로 일본 교토의 동지사대학에서 열린 제7회 일본 정지용 문학 강연 및 제2회 교토 정지용 한글콘테스트에 현지 한국어 유학생과 일본인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동지사 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는 이 대학 코리아연구센터와 한국유학생회, (주)오사카 한국문화원 등이 후원해 일본 최고의 명문 사학인 동지사대학에서 열렸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다.

이곳 동지사 대학은 정지용 시인이 1923년 입학해 졸업 때까지 대표작인 ‘향수’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문학 활동을 했던 곳이다.

무엇보다 정 시인의 대표적 시인 ‘카페프란스’를 탄생시킨 발원지이기도 하다.

한글콘테스트에 앞서 김승룡 옥천문화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한국현대시의 개척자이며 향토적 서정시인인 정지용 시인이 일본 동지사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것이 계기가 돼 교토에서 한글 콘테스트까지 열게 됐다”며 “특히 이 대학은 정지용 시인의 시비뿐만 아니라 정 지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한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어 상징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오사카문화원 박영애 원장은 “옥천문화원과 동지사대학 코리아연구센터가 시작한 일본 정지용 문학강연회가 올해로 벌써 7년째”라며 “지난 시간이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교류를 확대하고 향후 더 발전적 기회가 되는 촉매제가 정지용 시인 때문인 것이 문학이 지니고 있는 위대성”이라고 말했다.

문학강연에 앞서 열린 영동난계국악단원인 김율희 씨의 피리독주와 옥천시낭송협회 강영선 회장의 지용시 낭송이 지용문학포럼에 참석한 유학생과 일본인들에게 정지용 시인의 서정성에 빠져들게 했다.

특히 한글콘테스트에서 일본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노우에 야스씨는 자신이 한글을 배우게 된 동기가 정지용 시인의 시를 읽고 한글을 사랑하게 됐다는 산문을 발표해 일본인 최우수 상을 수상했다.

정 시인의 시를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결국 한글을 배우게 됐다는 이노우에 야스씨는 2015년 5번에 이어 최근 3년간 11번이나 한국을 다녀갈 정도로 한글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아직 정 시인의 고향인 옥천을 다녀오지 못해 아쉽지만 내년 지용제가 열리는 5월에는 옥천을 방문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 사이다마현 독협대학 심원섭 교수는 정지용 문학포럼에서 ‘윤동주가 읽은 정지용’을 통해 “당시 정식 시인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추천제도밖에 없었는데 윤 시인은 정지용 시인의 추천으로 3번이나 문장지에 데뷔했다”며 “모든 시인 지망생들에게 하늘과 같은 존재인 정지용 시인의 추천을 받았다는 것은 윤 시인의 작품성도 인정받은 것이지만 정 시인의 혜안도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최고의 산문시를 쓴 정 시인의 시인 ‘백록담’이 있는데 이 시에 문장을 유려하게 이어놓은 후에 “~리라”라는 고풍한 어미로 결론을 내리는 데 이를 윤동주 시인도 효과적으로 흡수해 시를 쓴 것을 보면 윤 시인이 정 시인의 예술적 테크닉을 깊이 의식하면서 시를 썼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시대상을 볼 때 청년기 정지용이 자신이 느끼고 있었던 시대적 정서인 ‘비애’를 정 시인은 가벼운 느낌이 들 정도로 화사하고 경쾌한 시적표현으로 승화시킨 반면 윤 시인은 자전적 고뇌를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고백하는 ‘영원한 슬픔’이요 ‘자기혐오’적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두 시인의 표현방법이 놓고 볼 때 “정 시인이 내적갈등이 적고 모범적이며 온화한 반면 윤 시인은 자기화한 서정시로서의 신앙시를 썼다”며 “정지용은 신앙시와 서정시는 서로 영역이 다른 만큼 신앙시는 부정적인 내용을 써서는 안되는 성스러운 영역이라고 생각한 반면 윤 시인은 신앙시속에 불경한 생각을 자신의 어두운 면모를 넣어 시를 썼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훗날에 가서는 정 시인은 신앙을 버렸고 윤 시인은 카톨릭 청년의 이미지를 가지고 살았다”고 밝혔다.

한국 유학생과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글콘테스트에는 100여명이 참석해 한글과 정지용 시인의 문화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번 행사와 관련 김승룡 문화원장은 “한 사람의 시인으로 인해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에서 문화제 행사를 갖는 것은 정지용 시인 뿐”이라며 “정 시인의 문학정신을 콘텐츠로 옥천을 넘어 세계의 문화콘텐츠가 되도록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한편 8일부터 11일까지 중국 상해에서 열리는 정지용 시인 문학포럼을 위해 한국에서도 20여명의 문화일행이 방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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