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개인이나 사회나 성공보다 실패가 더 일반적이다. 성공이 드물고 희소성이 있으니 책이나 TV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된다. 반면에 실패가 일상적이니 이러한 관심을 받지 못한다. 이 일상적인 실패가 성공의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평가가 전제돼야 한다. 왜 실패했는지,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 실패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실패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어떤 사회가 발전되었는지 아닌지를 볼 수 있는 기준으로 실패를 보는 시각을 들 수 있다. 실패와 관련해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와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내어서 사회의 공유재산으로 만드는 사회로 구분할 수 있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실패에 대하여 감정적, 도덕적으로 접근해 책임을 추궁한다. 이들 사회에서는 실패자나 실패한 것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실패를 마무리한다. 반면에 발전된 국가는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유사한 실패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 전체의 교훈이나 지적 재산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

우리 사회를 보면 실패로부터 발전적 교훈을 얻어내는 데 서툰 것 같다. 예로 실패의 역사인 일제 침략을 중앙청을 철거하듯이 역사를 청산해 마무리하고자 한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그러하다. 이렇게 청산된 실패의 역사는 우리의 교훈이 되지 못하고 독립 기념관의 전시물이 되어 있다. 6·25 전쟁은 우리가 평화를 지키고, 국가를 유지 보존해야 할 귀중한 역사적 교훈이다. 그러나 6·25 전쟁은 역사책의 한 페이지와 용산 전쟁기념관에만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적폐 청산으로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적폐 청산을 보면 적폐를 저지른 사람들을 법적 사회적으로 매장해 없애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청산이 단순히 과거에 적폐를 저지른 사람을 제거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적폐 청산으로부터 감정적인 카타르시스 이외에 얻을 것이 없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적폐 청산이 사회발전의 초석이 되기 위해서는 깨끗이 씻어서 없애 버리는 청산이 아닌 학습과 교훈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폐로부터 사회적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적폐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법적 잘잘못 이외에 적폐 대상이 된 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성공한 혁명가는 정치가이고 실패한 혁명가는 범죄자가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범죄자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 바람직한 사회는 실패자를 범죄자가 아닌 실험가로 본다. 즉 실패를 인정하고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실패가 교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반복적 실패에 대하여는 엄격하여야 한다.

지금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과거 권력자의 범법행위를 적발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실패의 역사와 정책이 성공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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