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며칠 전 평택~제천 간 고속도로를 달릴 일이 있었다. 11월 초라 주변의 산들은 울긋불긋 겨자 빛깔 은은함에 단풍의 절정을 이룬 채, 쨍한 가을 하늘 아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기분이 상쾌했다.

개통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달리는 차들은 많지 않았다. 한가롭게 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달리는데 1차선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물체가 눈에 띄었다. 나는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며 1차선에 떨어진 물체를 살폈다. 거기에는 꿩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쪽 날개는 피범벅이 된 채 도로 위에 붙어 있었고 나머지 한쪽 날개로 애써 퍼덕이며 날아가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울컥했다. 동시에 나는 차를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여기는 쌩쌩 차들이 달리는 고속도로라는 것을 인지해야 했고 가속 페달을 밟지 않은 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상쾌한 기분은 사라지고 처참한 기분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력을 다하는 날개짓과 고통스러운 꿩의 눈빛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운전해야 하는 일이 많으니 수도 없이 차에 치여 죽은 흔적들을 도로에서 만난다. 꽤 오래전부터 나는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를 발견하면 조용히 성호를 그으며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것만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했기에. 그러나 살아있으며, 살고자 바둥거리는 동물을 목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눈물이 빙 돌았다.

어릴 때, 겨울밤 동네 오빠들이 우리 집 마당 모여 꿩 사냥을 나간 적이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그들은 어디론 가로 나갔고, 횃불 든 그들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들의 손엔 커다란 꿩이 들려져 있었고, 다른 손에는 털이 달린 작은 짐승들이 들여져 있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들에게 잡힌 짐승들이 가여웠다. 차라리 나와 보지 말 걸, 내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싶었다. 괜한 호기심에 졸린 눈을 비비며 구경나온 나를 탓하기도 했다.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벌거벗긴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점점 늘어나는 ‘묻지마’ 폭력, 세계 곳곳 주요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에서도, 가깝게는 핵실험에서도 그리고 포항 지진에서도 보여주듯이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생태 환경적 세상은 자본의 논리에 밀리고, 다만 상품의 광고 속에서 이미지로 있을 뿐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꿀 수 있는 정책 속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가치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은 우선 돼야 한다. 생명은 인간의 정체성이자 삶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나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과 성장으로만 달려가는 고속도로 위에 떨어져 온몸이 찢긴 채 형체도 없이 사라져 이름도 알 수 없는 존재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처참하게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은 한 달, 더 안전한 세상을 고민하는 12월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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