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 고유어에 동네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 내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정한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의미라면 동네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나의 집의 옆 집의 옆 집의 옆 집으로 자꾸 건너가다 보면 도시 전체가 같은 동네가 되고 만다.

한자어 동내(洞內)에서 기원했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동’은 같다는 뜻의 동(同)이 아니라 골짜기나 동굴을 의미하는 동(洞)을 쓴다. 세분해서 보면 동(洞)은 물(水)이 같다(同)는 뜻으로 같은 물을 마신다는 뜻이다. 즉, 동네는 같은 물을 마시거나 사용하는 지역의 공간적 개념이다. 한 우물을 나누어 마시는, 한 골짜기에서 물을 길어다 사용하는 지역을 경계로 표시하면 같은 동네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의 어원이라고 하는 르완다어의 tonga는 큰 통(large basket)의 뜻이며, nya는 지역(region)을 의미한다. 결국 동네는 르완다어 ‘tonga + nya’에서 유래된 것으로, 물동이로 물을 떠가는 동산(洞山)의 주변지역을 의미하며, 이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동네’가 된 것이라고 한다. 한자어 동내(洞內)이든 르완다어 ‘tonga + nya’이든 결국 같은 물을 떠다가 마시는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동네를 정의할 수 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같은 물을 마시는 동네는 같은 생명의 근원을 공유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질도 비슷하다. 예로부터 동네마다 사람들의 기질이 다르고, 더 넓게는 지역과 시도 그리고 국가에 따라 사람의 기질이 다른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동네사람을 만나면 더욱 반갑고 동질적인 공동체임을 느끼는 것 같다.

태초부터 물동이를 지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작은 동네 단위의 삶을 살아온 인류는 저수지와 댐이 만들어 지면서 동네의 공간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졌다. 대청댐이라는 커다란 우물물은 가까운 청주, 대전, 세종뿐만 아니라 저 멀리 아산, 부여 사람들도 마신다. 충주댐 물도 증평, 이천, 여주까지 간다. 직선거리만 해도 60km(150리) 이상 떨어진 곳이 같은 물을 마시는 동네인 셈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대청댐이라는 큰 우물에 접해서 사는 사람들은 그 물을 마시지 못한다. 집 앞의 우물은 내 것이 아니라 저 멀리에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모순이자 갈등의 시작인 셈이다. 댐으로 생긴 억지 동네는 같은 물을 마시지만 같은 기질과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한다. 멀리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대청댐 상류의 사람들에게 내가 마실 물을 깨끗하게 하라고 요구하고 규제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또 그들은 미안한 마음과 어렵게 사는 상류지역 주민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물이용부담금을 낸다. 대청댐 물을 마시는 금강수계에만 1년에 1천200억원 넘게 물이용부담금이 걷힌다. 그런데 이 수계기금은 상류주민들에게 가지 않고 봉이 김선달에게 전해지고, 김선달은 닭 모이 주듯 상류지역에 찔끔 나눠주고 만다. 그리고 수계기금 때문에 마을 사람들끼리 갈등이 생기고, 하나 둘 떠난 상류 농촌마을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댐 하류는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댐 상류는 턱없이 부족하다.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돕자고 시작한 수계기금이 동네를 갈라놓고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말았다. 15년이 넘은 수계기금 제도, 이제는 좀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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