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올해가 마지막이에요. 내년에는 진짜로 하지마세요.”

“내년부터는 각자 집에서 하기로 하자.”

“이제는 애들도 다 커서 분가하고 김치 먹을 식구도 없으니 하지마세요”

“오가는 기름 값, 통행료면 김치 사고도 남아요.”

갖가지 이유를 들어 내년부터는 부모님이 김장을 하는 것을 못하게 하려 하지만 김장을 하시려는 부모님의 뜻을 꺾지 못했다.

“그 정도도 안 움직이면 오히려 여기저기 아픈 곳만 생각난다.”

“우리 몸 성해 할 수 있을 때까지라도 자식들 입에 좋은 음식 들어가는 것 보는 게 기쁨이다.”

“다들 하루 모여 얼굴 보는 날로 여기면 자식들 얼굴 한 번 더 보고 얼마나 좋으냐.”

결국 부모님의 고집을 꺾지 못해 내년에도 시골 친정집에서 김장을 하기로 했다.

주말 아침 일찌감치 빈 김치 통을 싣고 시골로 향했다.

일요일에 김장을 한다고 했으니 토요일 이 시간쯤 가면 절이는 것은 못하더라도 씻는 것부터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었다.

단풍놀이 가는 차들로 고속도로는 버스 전용차선 조차도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마음 한편에서 심술이 불근거렸다.

‘김장만 아니면 나도 지금쯤 저 대열에 끼어 있을 텐데...

지리산, 내장산, 주왕산 어디쯤의 단풍나무아래서 단풍보다 더 발그레한 모습으로 설레고 있을텐데... ’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무, 배추를 뽑아야하니 시골의 김장은 이를 수밖에 없다.

급하게 들러 끊어온 돼지고기 몇 근으로 보쌈에 막걸리를 마실 생각을 하니 그깟 단풍놀이쯤이야…위로가 된다.

평상시 걸리는 시간보다 30여분 더 걸려 시골집에 도착을 했다. 이 시간 쯤 에는 소금물에 담겨 있어야 할 배추가 어느새 새하얗게 샤워를 마치고 커다란 고무 통에 차곡차곡 담겨져 있었다.

순간 부아가 났다.

엄마의 주체 할 수 없는 부지런함과 도를 넘는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가 또 발동을 했나보다. 80이 넘는 노구에 새벽부터 서둘러서 이미 배추를 다 씻어 놓았고 부재료 준비도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속을 만들어 절인배추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김장의 90%는 끝난 셈이었다.

자식 다섯 명이 가져 갈 김장 준비는 이미 한 달 전부터였을 것이다.

마늘 까고 파 다듬고 무 뽑아서 씻고 젓갈 준비하고 알타리무 다듬어 총각김치 하고 고추 삭혀 동치미 담그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종종 걸음을 치고 아픈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계셨을까 생각하니 감사하고 죄송해야 할 일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당치도 않은 불만이 튀어 나왔다.

“오가는 기름 값에 통행료면 더 맛있는 김치 사고도 남아요. 그러니까 내년부터는 하지 마세요.”

어떤 부탁과 협박에도 끄떡 안하시지만 자식의 돈이 나간다고 하면 가장 꺼려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급기야 내가 맘에도 없는 처방을 내렸다.

“그러기야 하겠지만 엄마 아버지가 일일이 심어 가꾼 것에 비하겠냐? 좀 힘들더라도 우리가 해 줄 수 있을 때 까지만 가지러 오너라.”

결국 내 협박도 실패로 돌아가고 내년에도 배추를 심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부끄럽게도 나는 결혼 30년이 되도록 김장을 한 번도 담가보질 않았다. 내가 김장을 하러 간다는 표현은 이번처럼 빈 통 들고 김치 가지러 가는 것을 말한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무척 부러워한다. 아직 부모님이 계셔서 김장도 해주시니 얼마나 좋겠냐고….

사실이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속상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면 이기적인 생각일까?

지난 해 결혼 한 딸이 가끔 집에 들르면 굳이 필요치 않다는 것까지 챙겨서 차안에 넣어주기에 바쁘다. 고분고분 받아가는 딸이 고맙고 예쁘다.

‘이게 엄마 마음 이었구나’

친정을 다녀오는 길은 늘 차가 뒤로 주저앉기 직전이다. 트렁크 가득 실린 갖가지 먹거리들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앞부분이 들릴 지경이다.

받아 가는 것도 투덜거렸던 어리석은 딸이 이제 제 자식의 보따리를 싸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의 무게라는 것을.

부모님의 사랑을 때론 모른 척 받아들이는 것도 효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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