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나무 한그루 꽃 한포기 심을 곳 없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시멘트 벽돌에 그늘진 여백뿐이니 어떻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소나무가 빛이 잘 들고 바위산 꼭대기에서도 잘 적응하니 옥상에 소나무분재를 기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여겨 시작한 것이 어느덧 20년 세월이 흘렀나보다. 나는 그 때 근교 분재농원을 찾아가 소나무 십년 생 5그루를 구입했었다. 어느 정도 기본수형이 잡힌 어린 소나무를 작은 분에 심어놓고 낙락장송(落落長松)의 꿈을 그리며 귀여운 강아지를 기르는 것처럼 사랑에 빠졌었다.

내가 이렇게 소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소나무에서 덕(德)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즉 독야청청(獨也靑靑) 사철 푸름에 변함이 없고, 찬 서리 눈바람에도 위풍당당하게 장송(長松)의 위엄(威嚴)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다.

소나무의 매력은 무엇보다 줄기에 있다고 본다. 줄기의 육중함과 겹겹이 쌓여진 껍질에서 연륜이 녹아든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울퉁불퉁한 줄기! 노출된 굵은 뿌리! 보면 볼수록 향수가 묻어나는 장송(長松)의 그리운 모습만은 여운으로 늘 남는다. 뒤돌아 다시 볼까, 보고픈 그 모습을 분에 담아 옆에 두고 키우면서 내 인생의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고 싶었다.

분재(盆栽)가 살아 숨쉬는 ‘느림의 미학’이라 할 만큼 더디게 자라지만 지금은 수령이 30년쯤 되고 보니 해를 거듭할수록 정원이나 명승지에 있는 낙락장송(長松)의 모습으로 한 거름씩 변해가는 모습에 흐뭇한 느낌을 받는다.

자연의 축소판이 분재라하고 작을수록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만 축소된 분경(盆景)이 마치 문학에서 긴 산문을 압축한 한편의 시와 같은 느낌이다. 몇 자 안되는 시가 긴 소설보다 더 많은 심연의 이야기가 있듯 오래된 분재를 보면 그와 같은 감동을 받는다.

낙락장송(落落長松)의 역사적 일화를 살펴보면 이조 초기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이 세조로부터 사약을 받을 때부터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 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중략)…….’ 한이 설인 이 시(詩) 한수를 남겨 낙락장송이란 말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회자(膾炙)됐고. 강원도 영월 땅 청령포관음송(觀音松)은 노산군의 영혼과 함께 애달픈 솔바람 소리는 오늘도 울고 있다. 이 비통함을 일으킨 세조는 난치병으로 속리산 법주사를 찾는 길에 장송의 가지가 길을 막았다 터주니 사람도 아닌 나무에게 정2품 벼슬을 내렸다. 오늘날 정2품송은 늘어진 멋진 가지 한쪽이 강풍에 꺾여 반신불수가 됐다. 이 비운의 역사 앞에 인생무상, 권력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이렇게 낙락장송(落落長松)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선현(先賢)의 얼을 담고 민족의혼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남산위에 저-소나무 바람서리 불변한 우리민족의 기상이 이리라. 선현(先賢)의 얼이 담긴 낙낙장송의 고결한 자태를 작은 분 안에 담아내는 꿈을 위해 오늘도 나는 옥상에 소나무 분재 곁으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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