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루에서 거래는 잘 되었소?”

최풍원이 물었다.

“청풍도가 놈들이 모든 걸 틀어쥐고 있으니, 이제 호시절은 간 듯 해유?”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이전에는 경상들이 직접 행상들한테 물건을 팔았는데, 이젠 청풍도가에서 경상들 물건을 받아 우리한테 넘기며 온갖 횡포를 부리니 뭐 떨어지는 게 있어야지유.”

성두봉은 입맛을 쩍쩍 다셨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남한강을 따라 각 나루에서 이루어지는 상거래는 이것이 원칙처럼 이루어졌다. 한양에서부터 경강상인들이 소금배를 몰고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포구에 닻을 내리면 나루에는 사람들이 필요한 갖은 물건들이 풀어졌다. 그러면 순식간에 나루에 난장이 섰다는 소문이 퍼졌다. 산지사방에서 장사꾼들이 경상들이 가져온 물건을 떼기 위해 모여들었다. 덩달아 장꾼들도 집안에 있던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지고이고 너도나도 난장으로 향했다. 썰렁하던 나루터는 경강 뱃꾼들과 행상을 하는 장사꾼들, 장 구경을 나온 장꾼들이 뒤범벅이 되어 성시를 이뤘다. 그런 난장은 짧게는 서너 날에서 열흘까지, 길게는 두어 달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행상을 하는 장사꾼들은 나루에 벌어진 난장에서 경상들의 물건을 싸게 받아 장이 서지 않는 먼 곳까지 지고가 팔았다. 몇 배의 차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풍도가에서 뭘 어떻게 했는지 나루터에는 도가 놈들이 나와 장사를 하고, 경상들은 모두 읍내 갈보 집에서 술타령을 하고 있대유. 물건 값도 지들 맘대로 정해 놓았는데 이전에 몇 배는 더 달라며 배짱 장사를 하고, 더 지랄인 것은 우리가 지고 온 물건은 가격을 후려 때려 헐값으로 사겠다는 거유. 이래저래 이중삼중으로 손해를 보는 셈이니 이거 팔아 밥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을라나 모르겄네.”

성두봉은 낙심천만했다.

“오늘 자고 먹는 주막 값은 내가 모두 낼 테니, 성 형은 나랑 얘기나 좀 나눠봅시다.”

“내 아무리 궁하게 살아도 염치는 있는 사람이오. 어째 남의 것을 맨입으로만 얻어먹는단 말이유.”

“내가 먼저 청했으니 그리 하는 게 내 도리요.”

“그건 안 될 말이유! 누가 청했든 아니든 밥은 먹어야하지 않어유. 그러니 내 밥값은 내가 내유!”

“성 형, 알았으니 너무 그리 빡빡하게 하지 마슈!”

최풍원이 성두봉의 꼿꼿한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의 의견을 따랐다.

“그래, 무슨 일이유?”

성두봉이 재차 물었다.

“나랑 장사를 같이 해보지 않겠슈?”

최풍원이 본론을 이야기하며 성두봉의 의향을 물었다.

“댁이 장사꾼이요? 무슨 장사를 하시유?”

성두봉이 조금은 의문이 풀렸다는 듯 최풍원을 보며 거푸 물었다.

“성 형, 오늘 하룻밤이 진진 남아 있는데 뭐가 그리 급하오. 강원도는 성 형처럼 다 그리 급하시우?”

“강원도 비알에 살아보시유! 안 바쁘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유.”

최풍원의 농담에 성두봉도 농으로 받아쳤다.

“실은 나는 북진본방 대주요. 임방도 대여섯 개가 있소.”

최풍원이 주위를 살피며 소리 낮춰 말했다.

“북진본방이 뭐유?”

성두봉으로서는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최풍원이 북진본방과 청풍 인근에 개설된 임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청풍과 멀리 떨어진 영월에서 내가 할 일이 뭐유?”

“성 형이 영월에 북진본방의 임방을 내면 어떨까 해서 하는 말이요.”

“천지사방을 떠돌며 행상을 하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 임방을 낸단 말이유?”

성두봉으로서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닌 것 한 푼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어 하는 장사가 행상이었다. 가진 재산이 있다면 뭣 때문에 하루도 편한 날 없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겠는가. 향시가 열리는 장터나 목 좋은 곳에 주막을 차리고 앉은장사를 하면 신역 편하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장사로 치면 행상은 나루터에서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담꾼처럼 막벌이꾼이나 똑같은 신세였다. 농사지을 땅도 없고, 가진 돈이 없어 전은 고사하고 가가조차 차릴 수 없는 아주 빈곤한 사람들이 가장 밑바닥에서 하는 일이 행상이었다. 그런 성두봉에게 최풍원이 임방을 내서 장사를 해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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