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공자(孔子)는 기원전 551년 지금의 산동성 부곡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다. 아버지 숙량흘은 나이가 예순이 훨씬 넘었고, 어머니 안씨는 16세 무렵이라 정상적인 혼인관계가 아닌 야합에 의해 태어난 자식이었다.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때 너무도 가난하여 시장바닥에서 막일을 하였고, 상갓집에서 곡하는 일로 먹고 살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공자를 상갓집 개라고 불렀다. 20살에 결혼하여 이때부터 계(季)씨 집안의 머슴 일을 하게 되었다.

공자는 틈틈이 시간이 날 때면 주나라 예법을 공부하여 누구보다 예절과 예의에 박식했다. 그로 인해 나중에 노나라에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하지만 정치적 역량이 너무 작아 관직을 그만두고, 48살 이후에는 제자를 가르치고 사서오경을 집필하며 일생을 보냈다.

제자를 두는 것에 대해 공자는 사람차별이 없었다. 출신 성분이나 사회적 지위를 따지지 않았다. 그 무렵 학자들이나 퇴직한 관료들이 제자를 들인다는 것은 벼슬에 나설 사람을 육성하는 것으로 대부분 신분과 능력을 중시하였는데 공자는 그렇지 않았으니 아주 혁신적인 사고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하루는 공자가 노나라의 혼란 상태에 환멸을 느껴 제자들을 데리고 제나라로 가던 길이었다. 태산 기슭에 이르러 산길을 걷는 도중에 허술한 세 개의 무덤 앞에서 몹시 슬프게 우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공자가 걸음을 멈추고 그 우는 까닭을 묻자 여인이 흐느끼며 대답하였다.

“제가 이 산속에 살고 있는데 시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모두 호랑이에게 잡아먹혔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슬퍼 이렇게 우는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 무서운 산속을 떠나 마을에서 살면 호랑이게 잡혀먹는 일이 없을 것 아니오?”

이에 여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무리 호랑이가 무섭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 이 산속을 떠나 마을에 거하게 되면 그곳에는 무거운 세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금이 얼마나 많은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이에 공자가 하늘을 우러러 보며 관료가 도적놈인 세상을 깊이 탄식하였다. 이 이야기는 ‘예기(禮記)’ 단궁편에 나오는 고사이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정치가 가혹하고 관료가 부정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니, 백성들이 이를 감당 못해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한다는 뜻이다. 부자가 내야할 세금은 관료들이 눈감아 주고, 가난한 서민이 먹고 사는 것에는 세금이 가혹하다면 어찌 형평성에 맞는 조세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분명 불의한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만든다고 하니 이참에 소득에 따른 세금의 형평성도 개선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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