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지난 가을 청풍에서 생산된 곡물이 이제껏 남아있을 리는 만무했다. 주식인 쌀은 물론하고 잡곡들까지도 미처 겨울이 가기 전에 이미 동이 났기 때문이었다. 장날이 되면 난전에 조금씩 나오던 잡곡도 봄이 되면서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도 청풍도가의 상전들만은 찔끔찔끔 곡물을 내놓으며 감질나게 팔고 있었다. 분명 어디론가부터 곡물을 받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읍진나루에도 청풍장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청풍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집안에 당장 필요한 물품들을 구하려는 일반 장꾼들이었다. 읍진나루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행상이나 봇짐장수들이었다. 읍진나루에 돛을 단 경강선들이 올라오면 갯가에는 간절이 생선이나 건어물·소금, 그리고 생필품들이  푸짐하게 부려졌다. 그러면 제천을 거쳐 멀리 강원도 깊은 산골로 가는 장사꾼들이 물건을 받느라 줄나래비를 지었다. 읍진나루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원행을 하는 그런 장사꾼들이 많았다.

“이보시오, 도붓장사 양반! 요새 그쪽 장사는 어떤가요?”

최풍원이 짙은 강원도 말을 쓰며 소금을 흥정하는 행상에게 말을 걸었다.

“청풍거치 큰 고을이 이런데 강원도 산골이야 말해 뭐한데유!”

“어디서 오셨수?”

“영월유.”

“영월이면 맡밭이 훨씬 가까울 텐데 어째 먼 청풍까지 오셨수?”

영월이라면 영월 맡밭나루가 당연히 가까웠다. 그런데도 멀리 떨어진 청풍까지 왔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아 최풍원이 물었다.

영월 맡밭나루는 청풍 읍진나루에서도 이백 여리나 더 올라가야하는 하는 남한강 최상류 하항이었다. 바람이 좋아 물길이 평탄해도 단양을 지나 영춘을 거쳐 맡밭까지 거슬러 올라가려면 족히 사나흘은 걸려야하는 먼 곳이었다.

“장사꾼이 한 푼이라도 더 이득을 남길 수 있다면 어딘들 못 가겄시유? 제천까정은 자주 장사 행보를 하니 온 길에 여기서 물건을 떼면 발품 값은 버니까유.”

강원도에서 왔다는 그 사내의 목소리는 울퉁불퉁했지만 그래도 정감이 느껴졌다.

“우리 통성명이나 하십시다. 난 최풍원이오!”

“난, 성두봉이유!”

“맡밭과 읍진과 물건 값이 많이 차이가 납니까?”

“뱃길이 얼만데 그 운임만 해도 당연한 것 아니유? 거기서 한 말 살 돈이면 여기서는 두 말은 족히 사고도 남을 것이오.”

청풍만 해도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 깊숙한 곳이라 바닷가에 비하면 비싼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영월 맡밭은 거친 물길을 배를 몰고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배가 비싸도 결코 비싸다고 할 수는 없는 값이었다. 그것도 배로 한꺼번에 많은 양을 싣고 올라가니 그 정도지, 만약 등짐꾼이 지게를 지고 영월까지 지고 올라간다면 소금 값이 금보다도 비쌀 터였다. 그러면 강원도 깊은 산중 사람들은 소금을 먹을 수도 없을 것이었다. 경강상인들이 소금배를 몰고 최상류까지 올라가 나루에 정박하면 더 깊은 산골까지는 행상들이 소금을 지고 팔러 다녔다. 성두봉이 청풍 읍진나루까지 소금을 받으러 온 것은 맡밭에서 소금을 떼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상을 하는 장사꾼에게 신역 고된 발품을 파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몇 백리 길을 걷더라도 이득이 좀 더 생기면 그만큼 가솔들이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니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힘이 들어도 참고 집에 있는 식구들을 생각하며 견디는 것이었다.

“그래 여기서 물건을 떼고 나면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 거요?”

“영월로 가지유.”

“짐이 무거운데 가까운 장에서 팔고 가지 그러시우?”

“나루가 가까운 장에는 소금값이 싼데 돈이 되유? 영월까지 가서 산골로 들어가면 서너 배는 남길 수 있는데, 당신처럼 나귀가 있다면 물건을 잔뜩 떼니 싸게 팔아도 남는 것이 있겠지만 우리네 행상은 한 번 떼러 오기도 힘들고 얼마 지고 가지 못하니 값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까지 지고가 팔아야지유.”

성두봉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최풍원을 쳐다보았다.

“성 형, 오늘 꼭 가야 할 일이 아니라면 나와 함께 오늘 청풍서 묵을 수 있겠소?”

최풍원이 성두봉에게 물었다.

“뭣 때문에 그러유?”

성두봉의 얼굴에 의아스러움이 잔뜩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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