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 기피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결혼 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3년을 그냥 동거부부로 지내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얼마 전엔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던 남녀가 로또복권 1등 당첨 이후 여자가 잠적, 남자가 반환 소송에 들어갔다는 내용의 신문기사가 지면을 장식했다. 현실론자들은 부부 합의 하에 서로 검증기간을 가지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혼을 전제로 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혼인신고를 안 했다는 홀가분함은 작은 갈등에도 쉽게 이혼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쉽다.

불행의 단초를 제거하자

혼인신고 기피는 결혼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신세대 부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맞벌이 부부 증가와 늦은 출산, 그리고 무엇보다 급증하는 신혼이혼에서 비롯됐다. 중매를 통한 결혼일수록 심하다. 혼인신고 기피는 결국 이혼율 상승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혼인신고만 미루면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 할리우드 스타의 결혼문화를 그대로 답습, 재산분배까지 합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내 연예인들의 결혼 과정에서도 이 같은 일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결혼 전 사유재산에 대한 공증까지 받아 놓고 있다. 이혼을 염두에 둔 결혼으로 생각된다. 결혼이 자칫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러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혼인신고기피는 심각할 수밖에 없는 잘못 전파된 서양문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5월 결혼한 회사원 양모씨(30·여)는 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혼인신고를 미루고 있다. 결혼 후 상대를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남편이나 시댁과의 갈등 때문에 이혼도 생각 중이다. 지난 3월 결혼식을 올린 최모씨(28)도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희한한 일이 생겨나고 있다. 법적 효력도 없고, 상호 책임도 없는 ‘무늬만 부부’가 양산되고 있다. 즉, 서방형 동거부부의 양산이다.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이다.

부유층 집안의 자제일수록 혼인신고 기피현상은 뚜렷하다. 설령 혼인신고를 하더라도 주택명의는 남편이나 부인이 아닌 부모의 것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신혼 이혼에 대비해 1년 차 결혼생활을 지켜본다는 게 정설이다. 대개 살아본 후 성격이 맞지 않을 경우 이혼을 준비하기 때문에 위자료 등 여러 가지 사태에 대비하는 부류가 대부분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맞벌이 부부도 보편화되고 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도 역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혼인신고 기피는 축하 받은 결혼을 후회로 얼룩지게 할 수 있다. 이혼의 개연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의 이혼은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그저 동거관계를 청산하면 된다. 그것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된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일을 불행의 단초로 만들 필요는 없다. 혼인신고 기피는 축복받은 결혼식을 위로 받는 파혼식으로 만들 수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는 비단 옛 중국 변방에 살던 한 노인의 얘기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초월해 적용되는 진리다.

부부는 단수 같은 복수다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동거의무와 부양·협조·정조의 의무라는 물질적·정신적·육체적 의무를 지게 된다. 또 자신들의 재산에 관해 자유로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재산계약을 별도로 체결하지 않을 경우 재산의 권리와 귀속에 관해 법률이 정한 규정에 따르게 된다.

지난 14일 오후 청주 모 백화점 옥상에서 40대 남자가 가출한 부인을 찾아내라며 자살소동을 벌였다. 이 남자는 지난해 4월에도 다른 곳에서 같은 요구를 하며 자해소동을 벌인 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부부로 확인됐다.

결혼식은 서로에 대한 책임을 약속하는 의식이다. 부부의 책임은 누구 한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다. 서로가 책임을 인정해야 부부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 그래서 부부는 독신 남·여와 같으면서 아주 다르다.

부부는 복수(複數)로 만나 사랑으로 가정을 이룬 단수(單數)다. 사랑에 빠지면 온 우주는 그 사랑을 위해 공모하기 마련이다.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그 때의 감정을 다시 살려내 보자. 이 가을에 법적 부부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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