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상전 문이 열려있지 않으니 더욱 애가 탈 것이고, 한 나절이 되어 문은 열었으나 상전에는 곡물이 별로 없으니 비싸든 어쩌든 떨어지기 전에 사려고 아우성을 칠 것은 분명했다. 농민들은 이중삼중으로 손해를 보고 이중삼중으로 앉은자리에서 득을 보는 것은 청풍도가의 상전들이었다.

“청풍도가 놈들은 허가받은 도둑놈들이오!”

“청풍도가 뿐이오? 청풍관아도 맹 똑같은 놈들이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저 눔들이 지들 맘대로야 어찌 저런 짓거리를 할 수 있겠소? 관아가 한 통속이 되어 뒷배를 봐주니까 저러는 거지.”

청풍도가에서는 청풍관아의 관속들과 짜고 매점매석을 하고 값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 장날 상전 문을 여는 것도 정해져 있었다. 이런 것은 날 법으로 엄하게 정해져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도 제 멋대로 장마당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청풍관아의 아전들이 청풍도가의 일원이기도 한 까닭이었다. 이들 아전들은 관아에 소속되어 있으며 상전도 직접 운영하여 이득을 취하기도 하고, 관아에서 벌어지는 많은 이권에 개입하여 청풍도가에 넘기고 그에 상당하는 대가를 받아먹었다. 그러니 웬만한 불법은 아무런 스스럼없이 저질렀다. 고을민들은 눈앞에서 손해를 보거나 억울함을 당하고도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령 너무나 억울해 항변을 한다고 해도 상전 상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관아에서 든든하게 뒷배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놈들! 지놈들은 뱃때지 곯은 적이 없이 호의호식하며 사니, 못 사는 사람들 배곯는 고통을 전혀 알 수 없겠지.”

“저 놈들이 그걸 티끌만큼이라도 안다면 먹는 것을 가지고 그리 장난질은 못 칠거여!”

“인총들 목숨 줄이 달린 양식을 가지고 그러는 놈들은 당장 벼락을 때려야 해!”

“벼락이 그렇게 잘 맞으면 저 안에 있는 놈들 하나도 살아남아있을 놈이 없을 걸.”

장꾼들이 닫혀있는 상전 문을 가리키며 저주를 퍼부었다.

세월이 흐르며 변한 것은 세상만이 아니었다. 정말 많이 변한 것은 세상보다도 사람들 인심이었다. 청풍도가 상전들 상인들은 고을민들이 살수가 없어 야반도주를 하든 굶어죽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돈만 벌수 있다면 어떤 파렴치한 행위도 서슴지 않고 했다. 그러니 고을민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급박한 양식을 가지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염치없는 뻔뻔한 짓을 하는 것은 상인들만이 아니었다. 수십 년 살을 부비며 함께 살아온 이웃들 간에도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노다지 일어났다. 너무나 사는 것이 각박하니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남을 위해 양보하면 당장 나와 가솔들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 남을 도와주는 것도 내가 여유가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장 내 배가 등창에 가 붙고, 가솔들이 배를 곯아 아우성을 치는데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선 내가 먼저 살아야 했다.

“상전이 문을 열었다!”

장꾼들 중에서 누가 소리쳤다.

걸빵을 맨 사내가 말했듯 점심나절이 지나자 곡물전 중 한 곳이 문을 열었다. 장꾼들이 일제히 곡물전으로 몰렸다. 양식을 사려고 몰려든 장꾼들로 곡물전 앞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이봐! 늦게 왔으면 뒤에 서야지, 어째 새치기를 하는 거여!”

“누가 새치기를 했다고 그러는 거여. 내가 새치기 하는 것 형씨가 봤어?”

“너 중뜰 홍식이 동생 아니냐? 형님 친구한테 형씨가 뭐여!”

“형씨고, 형님 친구고 다 필요 없소!”

“저런 위아래도 모르는 싸가지 없는 놈!”

“싸가지고 나발이고, 난 양식이나 구하면 그뿐이요!”

형님 친구임을 밝혔는데도 홍식이 동생은 안면몰수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세상이 우째 될라고 이러나.”

점점 살벌해져가는 인심을 보며 홍식이 친구가 탄식을 했지만, 사람들은 곡물이 떨어지기 전에 남보다 먼저 사려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을 뿐 그의 말에 귀를 기우리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 팔 쌀은 여기 내놓은 한 섬이 전부요! 그러니 제일 좋은 조건으로 물건을 내놓은 사람한테 우선적으로 쌀을 내주겠소!”

곡물전 주인은 말도 되지 않는 거래 조건을 내놓았다. 장마당에 나오는 모든 물건들에는 합당한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그런데 곡물전 주인은 쌀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가격을 정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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